배병휴 본사 상임고문

경로우대 사회에 살고 있는 노후의 삶이지만 정해진 일 없고, 말동무 없어 늘 ‘혼술’ ‘혼밥’ 신세로 고독에 젖는다. 듣는 뉴스라는 게 고작 저출산 고령화로 “나라가 늙어가고 인구가 감소한다”는 경고이니 ‘죄인심정’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출생 통계가 32만6800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3만900명이 줄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로 보면 0.98명으로 여성이 출산할 수 있는 가임기간(15~49세) 중 출생아가 평균 1명 미만이니 인구 감소기다.

이는 세계적 저출산국으로 꼽혀온 대만 1.06명, 홍콩 1.07명, 일본 1.42명, OECD 평균 1.68명 등을 능가하는 세계 최저 출산국이다. 어찌 두렵고 무섭지 않는가.

필자의 고향, 경북 북부 내륙 산촌면의 경우는 연간 출생아 수가 겨우 20여명, 그나마 토종 산모는 한명도 없고 동남아에서 시집온 젊은 산모에게서 출생했다. 이를 보면서 옛적 층층시하 대가족제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세월의 비감을 한없이 느낀다.

‘나홀로’ 독신과 미혼으로 자유인의 삶을 추구하는 시절을 예찬하는 소리를 듣자니 울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네 눈으로는 세월의 발전이기보다는 ‘변절’이다. 나랏일을 생각하면 학생정원이 미달하고 국방병력 자원도 부족해지니 나라의 장래가 캄캄절벽 아닌가.

지난 2000년도 1인가구 수 222만이 지난해는 578만8천 가구로 급증했으니 마치 ‘핵분열’ 꼴이다. 서울에만 1인가구가 111만574 가구로 각 구청이 남성요리교실, 여성방범도구지원 등 1인가구 맞춤형 복지정책을 펴고 있다.

2018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 전국의 빈집이 무려 142만 채로 1년 전에 비해 15만5천 호가 늘어났으니 이 또한 1인가구 급증과 관련된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25만 호로 가장 많고, 이어 경북 13만7천 호, 경남 13만2천 호 순이니 지자체 ‘소멸경고’ 순위 아닐까.

역대 정부가 출생률 제고를 위해 쏟아 넣은 예산이 100조 원을 넘어섰다. 이는 곧 돈만으로는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어느 신문사가 전국 222개 지자체의 출산장려금을 조사한 결과 강원도 삼척시가 첫째아이 출산 때 도합 1676만 원을 지원, 전국 최고였다. 강원도 지자체들은 첫째아이 하나 출산에 최소 1400만 원 이상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원도에 이어 경북 봉화군 700만 원, 울릉군 690만 원, 그 밖에 충청·호남권도 최소 300만 원 이상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출산장려금 제도를 보면서 우리네 옛 사람들은 ‘난생 처음 듣는 소리’라면서 “세상에 애 낳는다고 돈 주나” “어찌 돈 받고도 출산하지 않느냐”고 분통하며 세월과 세상의 망령을 꾸짖고 싶어 한다.

비혼, 독신가구가 증가하며 밥 짓는 부엌이 사라지고 온라인 신선식품 주문이 늘어 배송시장이 호황이라는 신 풍속도가 생겨났다. 반면에 포장재, 식품용기 등 폐기물이 쏟아져 말썽이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유독 관악구에서 쓰레기 배출량이 급증하여 웬일인가 살펴봤더니 바로 1인가구 비중이 45%로 가장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신선식품 배송일감 수주를 두고 한국노총, 민노총 등 양 노총이 격돌하여 홈플러스의 경기도 안성의 1만 평 규모 신선물류센터가 민노총 산하 화물연대 트럭들의 입구봉쇄로 하루 손실이 무려 30~40억 원이라는 사건도 빚어졌다.

필자는 온 국민이 배고픈 시절, 나라의 인구조절정책, 보리혼식, 분식장려 등을 취재한 경제기자 출신으로 ‘그때와 지금’이 너무 다른 세상이라고 증언한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고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어 외국인 근로자들을 수입해야 하는 시절이다.

국회예산처 결산보고서가 지난해 양곡 보관관리비용이 3878억8800만 원으로 전년보다 53%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쌀 재고량이 189만 톤으로 FAO가 권장하는 적정량의 두 배가 넘는다. 이 때문에 정부가 쌀 5만 톤을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보내려 하지만 김정은이 수령 거부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평양방문 때 80만 톤 지원을 약속하여 남조선 쌀은 필요 없다는 배짱이다.

참으로 세월의 급변이 무상하고 무정이다. 노태우 6공화국 시절 인구정책 세미나에 참석했던 귀동냥으로 친지네 혼사 주례를 맡을 때마다 “열심히 애 낳아야 한다”고 주례사 했다가 혼주들로부터 “젊은이들이 싫어한다”는 핀잔을 들었었다. 최근에 와서 같은 노인이 된 그 혼주들이 “그때 무슨 선견지명으로 출산장려 주례사를 하셨나요”라고 인사하니 그냥 픽픽 웃을 노릇이다.

쓸데없는 은퇴 노인의 나라걱정이자 죄인심정일 뿐이다. 우리네 노인 힘으론 젊은 세대의 마음을 바꿀 방도가 없다. 차라리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이 출산할 수 있는 의술을 개발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대통령이 올 8.15 경축사를 통해 납북시인 김기림의 ‘새나라 송’을 인용하여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건설을 당부했지만 반일, 반미 등 이념으로는 안 되고, 저출산으로 망해가는 나라를 되살리는 방도가 가장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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