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참가자격제한 받은 업체, 공고 기간 중 ‘집행정지‘ 받아 낙찰...경주시 “제안서 접수 후 뇌물 사실 인지”...평가위원은 모른채 ‘반쪽 심사’...입찰공고기간 42일, 그 사이 집행정지 인용 받아...타 시군 공고 기간(6~12일) 대비 매우 길어

경주시가 발주한 15억8천만원 규모의 ‘도로대장 전산화 구축 용역’을 두고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뇌물을 공여해 입찰참가자격제한 처분을 받은 업체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경주시가 사업 지연을 이유로 예산을 이월하면서도 ‘긴급 입찰’ 대신 40일 이상의 최장기 공고 기간을 이례적으로 부여했고, 결과적으로 이 기간이 해당 업체의 법원 집행정지 결정을 기다려준 꼴이 됐다는 지적이다.

조달청 나라장터 부정당업자 제재 정보와 법원 사건 기록 등에 따르면, 이번 용역의 낙찰업체인 A사는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 입찰 등과 관련해 관계 공무원에게 1천만원 미만의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에 따라 2025년 12월 11일 자로 3개월간의 입찰참가자격제한 처분을 통보받았다.

해당 업체는 처분 직후 서울행정법원에 처분 취소 본안 소송과 함께 일종의 가처분 격인 ‘집행정지’를 신청해 2026년 1월 9일 인용받았다. 이에 따라 본안 소송 판결 시까지 처분이 정지됐고, 입찰 참여 자격을 임시로나마 회복했다.

경주시의 입찰 공고는 업체가 집행정지 효력이 유효하던 12월 22일에 게시됐다. 제안서 접수 마감일은 이듬해인 2026년 2월 2일로, 공고일로부터 무려 42일간의 기간이 주어졌다.

그 사이 해당 업체는 1월 9일자로 법원으로부터 집행정지 인용 결정을 받아내며 합법적으로 입찰 자격을 회복했고,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동일 용역에 대한 타 시·군의 입찰 공고기간을 살펴보면 ▲포항 6일 ▲울릉 10일 ▲상주 12일 ▲울산 12일 등 대부분 10일 내외로 확인된다.

만일 타 지자체의 일반적인 사례처럼 공고 기간이 10여일에 불과했다면, 해당 업체는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을 받기 전이라 제안서 접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논란의 핵심은 경주시가 42일이라는 긴 입찰 기간을 부여한 배경이다.

경주시는 서면 답변서를 통해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 준비 등 긴급한 국제행사 지원으로 인해 발주 시기가 일부 조정됐다”고 사업 지연의 이유를 밝혔다.

당초 2025년 예산으로 편성된 사업이 지연돼 불가피하게 명시이월을 통해 2026년에 집행하게 된 상황이었다.

통상적으로 이처럼 행정적 사유로 발주가 지연되고 시급성을 요하는 경우, 지방계약법에 따라 10일간 공고하는 ‘긴급입찰’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경주시는 스스로 “긴급한 행사 지원으로 발주가 늦어졌다”고 인정하면서도 “입찰 참여 희망 업체들에 충분한 사업계획 수립 기간을 제공해 내실 있는 제안을 유도하고자 긴급입찰(10일)이 아닌 정상적인 공고 기간(40일)을 적용했다”고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행정 절차가 지연되는 ‘긴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상 공고 기간’을 고집한 경주시의 판단이, 뇌물 혐의로 기소된 업체가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제안서 평가 과정에서의 ‘정보 은폐’ 논란이다.

이 사업의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낙찰자 결정은 기술능력평가(90점)와 입찰가격평가(10점)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기술능력평가의 대부분은 외부 평가위원들이 수행하는 정성평가(70점)로 이루어진다.

정성평가는 사업수행계획뿐만 아니라 업체의 위험관리(리스크 관리), 보안 및 안전 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하는 과정이다.

경주시 측은 구두 질의를 통해 “제안서 접수 후 해당 업체의 뇌물죄 관련 부정당 제재 내용을 인지했다”라고 시인하면서도, “제안서 평가위원들에게 해당 정보를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평가위원들이 업체의 도덕성과 사업 수행 리스크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정보를 발주처가 인지하고도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사실상 평가위원들이 업체의 중대 비위 사실을 모른 채 ‘반쪽짜리 심사’를 진행하도록 방치한 것으로, 평가 절차의 공정성과 적정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경주시는 사법 리스크에 대한 본지의 질의에 “법원에 의해 처분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에서는 지방계약법상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답변했다.

또한 국민권익위원회의 부패영향평가 권고와 대법원 판례 등을 들며, “집행정지 인용 업체를 임의로 배제할 경우 행정소송 패소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고문변호사의 자문 결과를 근거로 내세웠다.

향후 본안 판결 결과에 대비해 계약 특수조건 명시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하지만 경주시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APEC으로 인해 발주가 지연됐다”면서도 합법적인 긴급입찰 대신 40일의 최장기 공고를 낸 점, 그리고 평가위원들에게 업체의 뇌물 제재 사실을 숨겨 정상적인 정성평가 기회를 차단한 점 등은 단순한 행정적 판단으로 치부하기에는 맹점이 많다.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우는 경주시의 해명 이면에서, “우연에 우연이 거듭 겹쳐” 뇌물 비위 업체가 15.8억원 규모의 시 예산 사업을 수주하게 된 이번 사태를 둘러싼 적정성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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