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호 구미김천 취재부장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현직 국회의원들이 임기를 채우지 않은 채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풍경이 반복되고 있다.

광역단체장이라는 더 큰 행정 권력을 향한 ‘도전’이라 포장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지역구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4년간 지역 발전을 위해 뼈를 묻겠다”던 총선 당시의 절박한 호소는 당선과 동시에 유통기한이 끝나버린 것인가.

가장 먼저 지적할 지점은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적 훼손이다. 국회의원은 주민들이 입법부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달라고 권한을 위임한 대리인이다.

임기 절반도 채우지 않고 다른 자리를 엿보는 행위는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와의 엄중한 약속을 저버리는 ‘정치적 배신’과 다름없다. 국회 의석 하나가 갖는 입법적 무게를 고려할 때,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임기를 채우지도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지역민과 약속을 팽개치는 모습은 무책임의 극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혈세 낭비다. 의원 한 명이 사퇴하면 해당 지역은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투표소 설치부터 인력 운용까지, 한 번의 보궐선거에 투입되는 수십억 원의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정치인 개인의 ‘체급 키우기’를 위한 이직 비용을 왜 애먼 국민들이 떠안아야 하는가. “민생”을 외치던 후보가 시작부터 시민의 고혈을 짜내는 이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결국 문제는 정당의 비뚤어진 공천 시스템에 있다. 현재의 공천은 지역구민과의 약속이나 책임감보다는 당 지도부의 정략적 계산에 휘둘리고 있다.

‘필승 카드’라는 명목으로 현역 의원을 차출하는 구태가 반복되는 한,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 사퇴 러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제도로 강제해야 할 때다. 임기 중도 사퇴로 보궐선거를 유발한 당사자와 해당 정당에 선거 비용을 보전하게 하거나, 차기 공천 심사 시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감점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 페널티를 당헌·당규에 명시해야 한다.

지도부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틈이 없도록 공천 규칙을 ‘철의 원칙’으로 확립해야 한다. 정치는 신뢰다. 자신이 4년 동안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지역구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치인이 더 넓은 행정을 책임지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는 당의 간판이 아니라, ‘약속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고 국민의 혈세를 우습게 아는 정치인들을 향한 준엄한 심판의 장이 돼야 한다. 시민은 더 이상 정치적 야망을 위한 들러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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