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국 포항시의회 의원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은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제기된 과도한 손해배상 부담 문제에서 출발했다. 47억 원 손해배상 판결 이후 시민들이 노조 가족에게 작은 정성을 담아 보냈던 노란 봉투는 노동권 보호에 대한 사회적 공감의 상징이었다. 취지 자체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입법은 취지의 정당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다층적 협력 구조로 운영되는 제조업 중심 국가에서는 제도 설계의 정밀성이 핵심이다.

이번 개정의 핵심 쟁점은 제3조, 즉 사용자 범위 확대와 교섭 구조 변화다.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방향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하청 구조의 복잡성과 산업 현장의 교섭 질서를 얼마나 면밀히 반영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대한민국 제조업은 다단계 협력 생태계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포항 역시 대표 철강기업인 포스코를 중심으로 수백 개 협력업체가 연결돼 있다. 각 업체는 계약 조건, 임금 체계, 근로 환경이 상이하다. 이런 구조에서 교섭 범위를 광범위하게 확장할 경우 협상 비용 증가, 의사결정 지연, 상시 분쟁 가능성 확대라는 구조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복수노조 체제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하청까지 포괄하는 교섭 구조가 형성될 경우 현장의 교섭 질서는 상당한 혼란을 겪을 수 있다. 그 부담은 결국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하청노동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정작 보호받아야 할 이들이 제도 변화의 충격을 먼저 감내하게 된다면, 입법 취지는 현장에서 실효성을 잃게 된다. 노동약자 보호라는 기대가 산업 구조 분석과 정합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선언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커질 수밖에 없다.

입법을 주도한 정치권과 이를 구체화한 정부는 산업 구조 영향에 대한 충분한 사전 점검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시행령과 관련한 우려가 제기된 점은 정책 설계 과정에서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완성도 문제다.

포항과 같은 산업도시는 제도의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하다. 협력업체 구조가 촘촘하게 연결된 지역에서는 교섭 질서의 변화가 곧 고용 안정성과 직결된다. 탄소중립 전환, 글로벌 공급망 재편, 투자 경쟁 심화라는 대외 환경 속에서 제도적 불확실성까지 확대된다면 산업 경쟁력은 위축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찬반의 대립이 아니라 재설계다. 법 시행을 일정 기간 유예하고, 하청노동자가 직접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교섭 구조의 충돌 가능성을 재점검해야 한다. 동시에 산업도시와 제조업 밀집 지역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 산업영향평가를 병행해 보완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동권 보호와 산업 경쟁력은 대립 개념이 아니다. 정교한 제도 설계를 통해 상호 보완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보호받아야 할 이들이 제도적 혼란 속에 놓이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책임 있는 입법이다.

속도가 아니라 완성도의 문제다. 산업을 이해하는 입법만이 노동자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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