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길칼럼] 최남선 작곡 ‘총후의용의 노래’ 가사 발견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2026-04-02     강병찬 기자
▲ 김문길 박사

최남선(崔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근대 사학자이자 문인으로서 당대 최고의 인물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기임을 감안하더라도, 조선총독부가 그에게 접근하자 그는 임기응변식으로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해방 후 그는 때에 따라 친일파 인물로 간주되기도 했고, 때로는 독립애국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최남선은 이런 인물이었다.

최남선이 일제강점기 역사가이자 문인으로서 남긴 공적은 대단했다. 그런 만큼 이번에 내가 발견한 한가지 근대 자료인 ‘총후의용의 노래’가 끼친 영향은 컸다.

이 곡은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 후 급변하던 정세 속에서 조선인의 친일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데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총후’에서‘총’은 총을 메고 일선에 싸우는 자를 말하고, ‘후’는 전쟁을 위해 후방에서 총단결하는 것으로 군인들이 전방에서 싸울 때 후방에 사는 조선인을 ‘총후’라 했다.

최남선 작사 이면상 작곡의 '총후의용의 노래' 1938년도 작사.

 

‘총후의용의 노래’ 가사를 살펴보면, “(1)언덕에 마소(馬牛) 치는 아이들아 / 한 포기 풀이라도 더 뜻기라 / 진땀을 흘리면서 쌈(싸움)하는 이 / 그네만 고생하라 어찌하리 /제각금(제각기) 압헤 당한 그일 그일로 / 의용봉공(義勇奉公)에 참예하세 / (2)뵈틀(베틀)에 필육낫는(길쌈) 색시들아 / 한바듸 실이라도 더 멱이라 / 밤잠을 못자면서 쌈하는 이 / 그대만 애쓰라 어찌하리 / 제각금 앞헤 당한 그일 그일로 / 의용봉공(義勇奉公)에 참예하세 / (3)농부는 가레 한 번 더네흐며(갈며) / 바치는 마차 한 번 더 따리며 / 장사는 주판(籌板) 한 번 더 굴리며 / 선비는 책 한 장을 더 넘기라 / 제각금 앞헤 당한 그일 그일로 / 의용봉공에 참예하세 / (4)갓가지 생산작업 어느 것이 / 보국할 기회와 길 아니리요 / 전장에 선 이(군인) 보다 지지 안 케 / 총후의 모든 직분 더 힘쓰세/ 제각금 압헤 당한 그일 그일로 / 의용 봉공에 참예하세”이다.

이 노래는 ‘의용봉공가’로도 유명했다. 1943년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 식민지 조선의 국민정신을 총동원할 때 생긴 노래이다. 일제는 조선의 민요 아리랑을 금지시키고 조선인들이 이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이 노래가 바로 조선 사상의 대가인 최남선이 작사하고 이면상(李冕相)이 작곡한 것이다.

노랫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린아이부터 길쌈하는 여인, 농부, 문인, 장사꾼, 광부 등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이 의용봉공의 노래를 불렀다.

아리랑을 금지하고 이런 엄청난 노래를 지어 남녀노소 모두가 부르게 하니, 조선에서도 일본 천황의 정신은 높게 불타올랐다.

그러나 전쟁물자가 부족해진 일본제국은 1945년 8월 15일 패망했고, 일본 정부는 ‘총후의용의 노래’를 후쿠오카 이츠카에 있는 ‘강제동원 역사사료관’에 부끄러운 역사의 한 조각으로 숨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