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굿바이 파리 - (20) 색자色磁
박종규 한국교수작가회 부회장
2026-04-01 영남경제
“귀국요? 무슨 소리예요? 우린 같이 이겨나가요. 필요한 자금은 내가 댈게요.”
“아니야, 난 바로 떠나야 해. 아버님께서 하시는 일을 생각하면 아버님 같은 분을 잡아들이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여기서 내 공부만 할 때가 아니야. 당장 귀국해서 내가 할 일을 찾아보겠어.”
수경은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뜨거웠으나 수경은 차가웠다. 수경은 내가 흥분한 상태에서 섣불리 내린 결정이라며 차분히 생각하라고 옷깃을 잡아당겼다.
“군사정권은 총으로 권력을 잡은 거잖아요. 조용수 선생이 사형당한 마당에 더 추이를 지켜보세요. 잘못 행동하면 그쪽마저 잡혀 들어갈 수 있어요. 민간 정부와는 달라서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절대 안 돼요. 그리고 당신, 나랑 헤어질 거예요? 난 그렇게 못 해요!”
나는 즉각 대답을 못 했다. 내 말은 헤어지자는 뜻이 된다는 걸 미처 몰랐다. 하지만 사나이는 사나이의 길이 있으니, 더는 사사로운 일에 연연할 때가 아니었다.
“수경이, 미안해! 아무래도 안 되겠어.”
“냉정하게 생각하세요. 일단 귀국을 늦추고 한국 군사정부의 흐름을 읽어보아요. 끓는 물은 식기 마련이에요.”
땅거미 지는 창으로 노을이 들었다. 말을 마치고 고개를 떨군 수경의 눈가에 붉은 물빛이 비쳤다. 왠지 피눈물 같았다. 수경을 보면서 나는 멈칫했다. 수경은 물러서지 않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서서히 기가 꺾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이 길을 막았다. 그 일 이후로 우린 더 가까워졌다. 수경의 판단이 옳다는 것은 2개월 뒤 확인되었다. 아버님께서 풀려났다는 소식이 왔다. 아버님은 중앙정보부에서 두 달 동안이나 모질게 고문을 당했는데 풀려나는 데에는 어머니 역할이 컸다고 했다.
일찍이 백제 문화에 자부심이 많던 어머니는 일본에서 생활자기에 눈을 뜨셨다. 귀국해서는 이천에서 요 사업을 일으켜 상류층에 최고급 밥상 문화를 전파한 신여성이었다. 이천의 광하요에서 만드는 도자 식기는 현대식 상차림 바람을 일으켜 상류층 주부들의 관심이 쏠렸다.
어머니는 우리 상차림에서도 조화와 균형을 중요하게 보았다. 단아한 소반과 간결한 식기. 식기 안에 담겨 드러나는 음식의 색과 형태 등의 조화를 상차림에 적용하였다. 그릇의 담음새와 차림새에 정갈함과 정성까지 더했다. 하늘색 청자, 순백의 백자, 갈색의 분청 외에 다양한 색깔을 사용한 그릇이 이른바 *색자이다.
그릇의 색은 형태와 조화를 이룰 때 더욱 빛을 발하니 좋은 색자 고름은 우리 그릇과 음식의 만남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어머니는 남다른 상차림 감각으로 식단을 마련하였으니 광하요 저녁 식사에 초대받지 못하면 상류층이 아니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새 시대 주방 문화를 선도한 어머니는 재래식 식기에 길든 우리 주방 문화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군사 정권 시대에 이천 광하요 마당에서 군 장성들이 만찬을 벌이면 마당에는 수십 개의 별이 모여 하늘의 별들과 빛을 겨뤘다고 전한다.
어머니는 일본의 아버지와 파리의 나를 지키기 위하여 친정부적인 활동을 마다치 않았다. 나중에 청와대 출입 기자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어머니는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간 아버님을 풀어달라고 그 시절 권력 서열이 높은 사람에게 거금 5천만 환을 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육사 생도들을 위한 활동까지 기꺼이 하셨는데 군의 세력으로부터 가족들을 지켜내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광하요 사업이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채 나는 파리에서 내 공부에 올인하고 있었다. 내가 새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수경은 나를 단단히 붙잡으려면 결혼을 서둘러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나의 답을 얻은 수경은 자기 부모님 설득에 나섰다. 사귄 지 8개월째 되는 날, 수경 아버님에게서 최후통첩성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무슨 일이 있었냐? 네가 정말 허신을 했냐?”
수경은 난감했다. 허신 이라니! 몸을 허락했는지 요점을 물으시는 것이다.
“어쩌죠? 아버님께서 허신을 했느냐고 물으시는데…”
그렇다고 하면 가문을 들먹이며 못된 사람 취급을 할 것이다. 그때 나에게 퍼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수경 씨, 그냥 말이요. ‘임파시블’이라고만 답해 드리세요.”
임파시블, 인제 와서 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경은 임파시블을 되뇌며 웃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수경 부모님 승낙이 떨어졌다. 허신은 결국 묘책이 되어 주었다.
*우리 상차림의 맛과 멋 / 광호 문화재단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