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경주시의회, “산내면 풍력발전 특혜 논란” 안건 연말 기습 상정

담당 부서 바꾸자마자...‘불허’ →‘허용’ 급선회...고위공무원 - 사업자 ‘지인설’...市 집행부 오락가락 행정에도...책임 회피용 거수기 자처하나

2025-12-17     김대엽 기자
ⓒ김창숙 기자

말 많고 탈 많던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일대 풍력발전시설 조성사업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주시의회가 오는 18일 본회의에서 관련 안건을 9개월 만에 부활시키기 위한 표결 절차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경주시의회는 18일 열릴 제294회 제2차 정례회 제3차 본회의에서 ‘경주시 산내면 풍력발전시설 조성에 따른 영구시설물 축조 동의안’의 재상정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을 진행한다.

해당 안건은 민간 사업자가 풍력발전단지 진입로를 개설하기 위해 시유지(공유재산) 사용을 요청한 사안이다.

이미 지난 3월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찬반 격론 끝에 안건 처리가 보류된 바 있다. 당시 의회는 경주시 집행부의 오락가락하는 행정 판단과 공유재산 사유화에 따른 특혜 시비를 문제 삼았다.

보류 결정 이후 9개월이 지났지만,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최근 해당 사업 담당 부서의 고위 공무원이 사업시행자 대표의 배우자와 친구 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주시의 이해할 수 없는 입장 변화가 ‘지인 찬스’에 의한 특혜가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연말로 예정된 해당 고위 공무원의 퇴직 전에 사업을 매듭짓기 위해 무리하게 안건을 재상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 승소한 소송까지 뒤집은 ‘자기부정 행정’... 원칙은 어디에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논란의 원죄가 전적으로 경주시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행정의 기본 원칙인 ‘일관성’과 ‘신뢰성’의 붕괴다.

경주시는 지난 2018년 사업 초기부터 해당 시유지에 대해 ‘대부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다.

당시 이 시유지를 관리하던 산림경영과는 “시유지의 집단화 및 향후 행정수요 대비를 위해 보존이 필요하다”며 선을 그었다.

이어진 행정심판에서도 심판위원회는 “공공 목적의 활용도가 높은 토지이므로 보존·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경주시의 손을 들어줬다.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불허’의 정당성을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시유지 관리 업무가 산림경영과에서 축산정책과로 이관되면서 기류가 급변했다.

당시 업무를 넘겨주던 산림경영과는 “풍력발전 시행사에 대부를 허용할 경우, 경주시가 특혜를 제공했다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문서로 명시해 경고했다.

하지만 바통을 이어받은 축산정책과는 전임 부서의 우려와 행정심판 승소 결과를 모두 무시한 채, 돌연 입장을 바꿔 시의회 동의 절차에 착수했다.

이 같은 ‘묻지마 식’ 행정 급선회 배경에 담당부서 고위 공무원과 사업자 측의 사적 인연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주시 행정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 의회로 넘어온 ‘폭탄’... 거수기 전락하나

공은 다시 경주시의회로 넘어왔다. 의회는 지난 3월 경제산업위원회를 통과한 이 안건을 본회의에서 보류시키며 제동을 건 바 있다. 이는 경주시의 무리한 행정에 대한 경고이자, 지역 내 찬반 갈등을 의식한 조치였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 의회는 슬그머니 이 안건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정치적 셈법과 집행부의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경주시의회 관계자는 “다수 의원으로부터 안건 재상정 요구가 접수돼, 절차에 따라 18일 본회의에서 상정 여부를 묻는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출석 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안건은 정식 의제로 부활하며, 곧이어 가결 여부를 묻는 최종 표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문제는 3월 보류 당시 지적됐던 문제점들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주시의회 A 의원은 “집행부의 오락가락 행정에 대한 해명도, 주민 갈등 봉합도, 사업 타당성 검증도 무엇 하나 이뤄진 게 없다”며 “제대로 된 토론이나 검증 없이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표결을 강행하는 것은 누군가를 위한 ‘청부 안건처리’라는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 역시 “이번 본회의는 경주시의회가 시민의 대의기관인지, 아니면 집행부의 책임을 대신 떠안는 ‘거수기’인지 판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특혜 의혹이 짙은 사안에 대해 원칙 있는 제동을 걸 수 있을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