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철강산단 공급 스팀 관로 파손한 채 방치... 경북도 “나 몰라라”
9개사 공급 OCI 친환경 스팀… 냉천 재해복구 과정서 절단...연간 18만톤 친환경에너지 자원 사장...공문 통보로 행정 요청 ‘사실상 강제’...9곳 공급 중단에도 보상은 없어
포항 철강산업단지 입주업체에 공급하는 OCI 스팀 관로가 수년째 중단된 채 방치되고 있어 막대한 친환경 에너지 자원이 사장되고 있다.
경북도는 태풍 힌남노 피해 복구를 위한 냉천재해복구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포항 철강산단 일대에 구축된 OCI 포항공장의 스팀 공급 관로를 절단했다.
경북도는 “폐관 예정 관로였을 뿐”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스팀 공급이 중단되면서 기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녹색성장의 상징으로 불리던 에너지 순환 인프라가 공공사업에 의해 훼손된 셈이다.
냉천재해복구사업은 태풍 힌남노 당시 범람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냉천과 칠성천 구간의 제방 확장과 하천 정비를 위한 사업이다. 경북도는 2023년 5월, 총 982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공사를 착공했으며,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문제의 관로는 포항시 남구 청림동 900-2번지 일원 냉천교 구간을 통과하는 스팀 공급 관로다. 경북도는 공사 과정에서 이 구간이 공사 노선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OCI 측에 공문을 보내 절단을 요청했고,
OCI는 “행정 요청을 받은 만큼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며 자진 철거 형식으로 관로를 절단했다.
경북도는 이에 대해 “이미 사용되지 않아 폐관될 관로였다”고 주장했지만, OCI는 “공사 종료 후 다시 연결해 스팀 판매를 재개할 예정이었으며, 관로는 정상적으로 유지·관리되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스팀관로는 2011년 OCI 포항공장이 구축한 에너지 재활용 인프라다. 카본블랙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를 이용해 스팀을 생산하고, 이를 포항 철강산단 내 기업들에 공급하는 친환경 사업으로 알려졌다.
연간 18만t 규모의 스팀을 공급하며, 당시 포항시와 경북도는 이를 ‘녹색성장의 대표 모델’로 홍보했다. 총 8km 길이의 관로 중 이번에 절단된 구간은 냉천교를 통과하는 핵심 연결부다.
현재 해당 구간만 제거된 상태이며, 나머지 관로는 여전히 매설돼 있지만 단절로 인해 전체 관로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OCI 관계자는 “절단된 구간을 복구하지 못하면 남은 관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며 “공사 후 복구 계획을 검토 중이지만, 행정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스팀 공급이 중단되면서 냉천교 안쪽 구간의 기업 1곳만 공급이 가능하고, 나머지 9곳의 수요기업에는 공급이 전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된다. OCI는 이로 인한 판매 손실을 발생했음에도 경북도나 포항시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OCI는 포항시에 재산상 손실 보상을 요청했지만, “하천 복구사업이 공익사업에 해당해 보상 대상이 아니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행정소송 가능성에 대해선 “지자체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수긍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행정이 절차상 ‘자진 철거’ 형식을 취함으로써 법적 책임을 피했고, 기업은 현실적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행정이 친환경 산업 인프라를 스스로 훼손한 아이러니”로 평가한다.
인프라 전문가 A씨는 “냉천재해복구사업은 필요하지만, 기존 매설 인프라에 대한 사전조사와 대체선 확보 절차가 미흡했다”며 “특히 산업단지 기반의 에너지 순환망은 지자체가 오히려 보호해야 할 공공재 성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환경 전문가는 “경북도는 ‘폐관’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기업이 향후 재가동을 전제로 관리 중이었다”며 “공문 통보로 자진 철거를 유도한 건 행정의 책임 회피성 조치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현행 공익사업 관련 법령에는 하천복구사업 중 매설관·산업시설 훼손에 대한 명확한 보상 규정이 미비하다. 이로 인해 민간이 손해를 입더라도 “공공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이유로 배상받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