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바다의 유산”, 제26회 포항 구룡포 과메기축제 15~16일 개막
구룡포 9대 노포와 함께 즐기는 ‘시간이 만든 맛’, 바람이 빚은 미식의 향연
살이 애는 듯한 겨울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포항 구룡포의 골목마다 덕장에 매달린 꽁치들이 해풍을 맞으며 빛난다.
그 풍경은 포항 사람들에게는 계절의 신호이자, 미식가들에게는 겨울을 기다리게 하는 이유다.
찬 바다바람에 꾸들꾸들하게 마른 과메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바다와 계절, 그리고 사람의 기다림이 빚은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오는 11월 15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제26회 포항 구룡포 과메기축제는 ‘바다와 바람이 키운 자연 그대로의 맛’이라는 주제로 구룡포읍 아라광장 일원에서 열린다.
포항구룡포과메기사업협동조합이 주최하고 포항시·구룡포읍·구룡포수협·포스코 등이 후원하는 이번 축제는 과메기 건조 시연, 농수산물 직거래장터, 시민가요제, 지역 예술단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특히 15일 오후 2시 개막식에는 가수 최수호 등이 참여하는 축하무대가 마련돼 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축제의 장이 펼쳐질 예정이다.
■ 바람이 만든 맛, 전통이 키운 산업
과메기의 기원은 조선시대 구룡포 어부의 ‘저장의 지혜’에서 비롯됐다.
잡은 청어를 덕장에 걸어 말리며 저장했던 방식이 오늘날의 과메기로 발전했고, 시간이 흐르며 재료는 청어에서 꽁치로 바뀌었다.
구룡포의 차가운 해풍은 생선의 비린내를 잡고 감칠맛을 농축시켜 전국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전통은 단순한 음식 제조를 넘어 포항 지역의 겨울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구룡포에는 150여 개의 과메기 가공업체가 있으며, 연간 2천 톤 이상이 전국으로 출하된다.
지역 어민, 수협, 운송업체가 맞물리며 매년 1천억 원 규모의 경제효과를 내고 있다.
포항시 관계자는 “과메기 산업은 전통, 미식, 관광이 결합된 포항형 융복합 산업의 대표 사례”라며 “지역 어민의 소득 창출은 물론, 포항 경제의 계절적 균형을 이루는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용의 전설이 남긴 마을, 구룡포
신라 진흥왕 시절, 장기현감이 구룡포 앞바다를 순찰하던 어느 날, 천둥과 번개가 치며 바다에서 열 마리의 용이 솟구쳤다.
그중 한 마리가 벼락을 맞고 떨어졌고, 아홉 마리만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그 바다를 ‘아홉 마리 용의 포구’, 구룡포(九龍浦)라 불렀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떨어진 한 마리의 용이 세월이 흘러 과메기가 되어 인간 세상에 남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시인 양광모는 시 「구룡포 과메기」에서 “하늘에 오르지 못한 용 한 마리가 겨울 바람에 몸을 말리며 과메기가 되었다”고 읊으며, 구룡포의 풍경과 신화를 시적으로 형상화했다.
이처럼 과메기는 바다의 음식이자, 구룡포의 정체성과 신화를 품은 지역문화 그 자체다.
포항 구룡포과메기사업협동조합 관계자는 “과메기는 단순한 겨울 별미가 아니라, 지역 어업과 전통의 계승을 잇는 상징”이라며 “축제를 통해 세대 간 문화적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 축제의 미식 동반자, 구룡포 9대 노포
축제의 또 다른 묘미는 세월이 만든 구룡포의 ‘노포 미식’이다.
구룡포사랑모임(사무총장 조이태)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구룡포 9대 노포 맛집’을 추천했다.
50년 이상 전통을 이어온 이들 가게는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구룡포의 세월과 사람의 이야기가 깃든 생활문화의 기록물이다.
▲하남성반점(1934) — “불의 용, 세월이 만든 화룡지미”
구룡포 최초의 중화요리집. 1934년 ‘동화루’로 시작해 3대째 운영 중으로 해산물 짬뽕과 탕수육이 대표 메뉴로, 포항 앞바다의 신선함이 담겼다.
“불향 속에 바다의 깊은 감칠 맛”으로 이름나 있다.
▲까꾸네 모리국수 — “어부의 해장국, 항구의 온기”
81세 이옥순 할머니가 운영하는 소문난 집으로 콩나물·해산물·양념장의 조화가 일품이다. “얼큰·담백, 구룡포의 바다를 한 그릇에”라는 평판이 주를 이룬다.
▲제일국수공장 — “해풍이 말린 국수의 예술”
1971년 창업, 국내 유일의 해풍 건조 국수 공장이다. 쫄깃하고 퍼지지 않는 식감으로 ‘명품 국수’로 평가받고 있다. 미시가들은 “면발에 바람을 묻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철규분식 — “겨울의 용, 단팥죽과 찐빵의 추억”
1950년대부터 이어온 구룡포의 분식 원조로 ‘단팥죽에 찐빵을 찍어 먹는’ 전통이 현지인의 겨울 미식으로 꼽힌다. “달콤한 향수, 한입의 포근함”을 잊을 수 없다.
▲함흥식당 — “복탕의 향, 바다의 기도”
항구 직송 복어로 끓여내는 복매운탕·복지리 명가로 얼큰함과 담백함의 공존하는 복어 맛집이다. 맑은 국물 속 항구의 깊이가 느껴진다.
▲할매전복집 — “해녀의 손끝, 바다의 진심”
1970년대 좌판에서 시작된 전복 전문점으로 활전복죽·전복회가 대표 메뉴다. 바다의 숨결이 담긴 보양식으로 정평이 나있다.
▲모모식당 — “고래의 기억, 세대를 잇는 맛”
고래수육·고래전골 명소로 구룡포의 고래잡이 역사와 장인의 손맛을 계승하며 “담백함 속 깊은 전설”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할매국수 — “생활식의 상징, 정겨운 한 그릇”
시장 인근에서 60년 이어온 국수집으로 멸치육수의 깔끔함과 탱글한 면발이 특징이다. 소박하지만 잊히지지 않는 맛. 바로 그것이다.
▲백설분식 — “돌문의 용, 추억이 양념이 되다”
구룡포 최초의 떡볶이집으로 떡국떡으로 만든 떡볶이와 옛날 팥빙수가 명물이다. 쫄깃·부드러움으로 무장해 50년의 시간의 맛이 느껴진다.
■ 바다의 용이 지켜낸 맛, 사람의 시간이 만든 축제
포항의 겨울은 차갑지만 구룡포의 바람은 따뜻하다.
하늘로 오르지 못한 한 마리 용이 바람에 몸을 말려 과메기가 되었듯, 구룡포의 미식은 사람과 바다가 함께 빚은 이야기다.
이번 제26회 포항 구룡포 과메기축제는 단순한 먹거리 행사가 아닌, 지역 경제와 문화가 어우러진 바다의 축제다.
찬 바람이 불어올수록 덕장은 깊은 향을 품고, 골목의 노포들은 따뜻한 불빛을 밝힌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도시, 포항 구룡포.
이곳에서는 바람도, 맛도, 사람의 시간도 모두 ‘용의 숨결’로 이어져 있다. 이번 주말, 구룡포의 바람 속에서 그 전설의 맛을 직접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