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통장 ‘무용론’ 확산…3년 새 225만명 줄며 올해 최저치

분양가 4년 새 62% 급등·규제지역 확대에 실수요자 이탈 가속…“제도 실효성 재점검 시급”

2025-11-09     강신윤 기자
청약통장이 사실상 ‘사장(死藏) 통장’으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분양가 급등과 당첨 경쟁 심화, 대출 규제 강화가 맞물리며 청약통장 가입자 수가 올해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금리 인상과 세제 혜택 확대 등 각종 유인책을 내놨지만, 실수요자들의 ‘청약 피로감’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자료에 따르면 9월 기준 전국 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청약저축·청약부금·청약예금 포함) 가입자 수는 2634만9934명으로, 올해 들어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집값이 본격 하락세로 접어들기 직전이던 2022년 6월(2859만9279명)보다 225만명가량 감소한 수치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022년 하반기부터 매달 줄어들며 2년 8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왔다. 올해 들어서도 3월(+4,435명)과 8월(+6,968명)을 제외하고 매달 가입자가 줄었다. 9월 한 달 동안에도 2만3천명 넘게 감소하며 하락폭이 확대됐다.

정부는 주택도시기금 주요 재원인 청약저축액 감소를 막기 위해 금리를 세 차례(2022년 11월, 2023년 8월, 2024년 9월) 인상하고, 소득공제 한도를 300만원으로 늘리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도입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전문가들은 “청약통장 가입자 감소는 단순한 제도 피로감이 아니라, 청약시장 진입 장벽이 급격히 높아진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 분양가 4년 새 62.5% 급등…청약 접근성 추락

부동산R114에 따르면 3.3㎡당 전국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2021년 1,303만원에서 올해 2,118만원으로 4년 만에 62.5% 급등했다.

원자잿값 상승과 인건비 부담이 겹치며 분양가 인상이 가팔라졌고, 이는 곧 실수요자의 청약 포기를 불러왔다.

청약 경쟁률도 급락했다.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 아파트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7.1대 1로, 2020년(26.8대 1)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수도권은 분양가 상한제 적용 단지 외에는 시세차익이 크지 않아 청약 매력도가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정부의 잇단 규제 강화도 청약시장 위축을 부추겼다. 수도권을 대상으로 한 ‘6·27 대책’으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묶였고, ‘10·15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이 규제지역에 포함됐다. 규제지역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비규제지역 대비 30%포인트 낮은 40%로 제한된다.

분양가 15억~25억원 단지는 대출 한도가 4억원, 25억원 초과는 2억원에 불과해, 사실상 ‘현금 부자’가 아니면 청약에 나설 수 없는 구조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전세를 낀 갭투자마저 봉쇄되면서 자금 여력이 부족한 청년·신혼부부층의 청약 접근성이 급격히 낮아졌다.

■ “고스펙 청약통장만 당첨 가능”…실수요자 체감효과 ‘제로’

전문가들은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청약통장 자체가 실질적 효용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월용청약연구소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일부 단지는 시세차익이 크지만, 이마저도 높은 가점을 가진 ‘고스펙 청약통장’만 당첨이 가능하다”며 “대다수 가입자는 경쟁력 부족으로 청약을 포기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리얼투데이도 “청약통장 감소는 제도 피로감보다 금융 부담과 진입 장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분양가 안정화, 청약제도 개편 등 구조적 개선 없이는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 회복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 “청약시장 정상화 위한 근본 처방 시급”

시장에서는 청약통장 제도를 ‘실수요자 주택 사다리’로 복원하기 위한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고금리·고분양가·고가점 구조가 겹치면서 청약통장은 더 이상 내 집 마련의 출발점이 아니다”며 “금융 규제 완화와 분양가 현실화 없이는 청약시장 신뢰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청약통장 감소는 단순 통계가 아니라, 국민이 제도에 대한 ‘기대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라며 “정부는 단기적 가입 유인책보다 주택공급 구조와 청약제도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약통장은 한때 “국민 2명 중 1명”이 들던 필수 통장이었지만, 이제는 “당첨 가능성이 없는 저축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주거 불안이 장기화되는 지금, 청약제도 개편 없이는 ‘내 집 마련의 사다리’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