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1년 연장 시 고령자 5만명 은퇴 유예… 청년 일자리 5만개 증발 우려

“고령사회 대비는 필요하지만, 청년 고용 충격 최소화 병행돼야”

2025-11-09     강신윤 기자
정년이 60세에서 61세로 연장될 경우 약 5만 명의 정규직 고령자가 1년 더 직장에 머무는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그만큼 청년층의 신규 고용 여력은 줄어들어 청년 일자리 약 5만 개가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령화 속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청년층의 취업 한파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국가데이터처의 경제활동인구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59세에서 60세로 넘어가는 시점에 상용근로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4년생 상용근로자는 59세였던 2023년 29만1천명에서 60세인 지난해 23만7천명으로 5만4천명 감소했다.

1960~1964년생 평균 감소율은 20.1%에 달했다. 이는 법정 정년 60세 도달로 인한 집단 퇴직의 결과로 풀이된다.

대기업(종업원 300인 이상)에서는 감소폭이 더 컸다. 1964년생 대기업 상용직은 59세 때 4만5천명이었으나 60세에는 2만5천명으로 반 토막(-44.5%)이 났다.

정년 연장 시 이들이 1년 더 근무하게 되는 만큼 기업은 고령 인건비 부담을 떠안게 되고, 그만큼 신규 채용 여력은 줄어든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 근로자 1명이 늘어날 때 청년 근로자 수는 0.4~1.5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단순 대입할 경우 정년 1년 연장 시 연간 5만개 수준의 안정된 청년 일자리 공급이 사라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 청년층 취업자 수는 2021년 11만5천명, 2022년 11만9천명 증가했으나 2023년엔 9만8천명, 2024년엔 14만4천명 감소하며 역전됐다.

20대 신규 일자리 비중도 2022년 51.4%에서 올해 46.9%로 하락했다.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으로 분류된 인원도 44만6천명으로, 이 중 34.1%가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고령화 속 정년 연장은 불가피하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생성형 AI 확산으로 청년 고용 여건이 이미 악화한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 겹치면 충격이 커질 수 있다”며 “기업이 준비할 시간을 두고 임금체계 개편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2000년부터 25년에 걸쳐 65세 고용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2000~2005년은 노력기, 2006~2012년은 선별적 대상 고용 의무화, 2013~2025년은 희망자 전원 고용 연장 단계로 나누어 기업 부담을 최소화했다.

또한 기업이 ‘정년 폐지·정년 연장·계속 고용(재계약)’ 중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했다.

반면 한국은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신규 구인배수)가 0.58개로 일본(2.28개)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해 노동시장 여건이 훨씬 열악하다. 재계는 충분한 논의 없는 연내 입법 추진은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년이 5년 연장되면 수만명이 더 남게 되고, 공간과 인건비 부담이 급증한다”며 “청년 일자리를 줄이지 않고 제도를 운영할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조사처는 “정년 연장은 고령사회 대응의 핵심이지만 청년층 충격을 고려한 단계적·점진적 시행이 필요하다”며 “임금·근로시간 조정과 청년 고용 모니터링을 병행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청년층의 희생 위에서 추진돼선 안 된다. 정부는 ‘고령자 일할 권리’와 ‘청년 일자리 확보’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맞출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