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 타결 임박…3,500억달러 투자 패키지 ‘디테일 조율’
美 “디테일만 남았다”…韓 “외환안전장치 반영 기대” 협상 급물살…APEC 정상회담 전 타결 유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으로 촉발된 한미 무역 협상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양국이 3,500억달러(약 499조원) 규모의 한국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과 통화스와프 등 외환시장 안전장치에 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보이면서 조만간 최종 합의에 이를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는 한국과의 협상을 마무리하려는 참이며, 세부 사항을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10일 안에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한다”며 협상 타결 가능성을 시사했다. CNBC 인터뷰에서도 “한국과의 협상이 곧 끝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핵심 쟁점은 한국이 약속한 3,500억달러 투자금의 구성 비율과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현금을 내놓는 지분투자(equity)를 전체의 약 5% 수준으로 제한하고, 상당 부분을 보증(credit guarantees) 형태로 진행하되 일부를 대출(loans)로 충당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일본과의 협상처럼 ‘투자 백지수표(blank check)’ 방식, 즉 직접투자 비중을 크게 높이는 방식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합리적 수준의 직접투자 비중 조정 ▲투자처 선정 시 한국의 상업적 관여권 보장 등을 협상 조건으로 제시하며 맞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워싱턴DC 도착 직후 “양국이 빠른 속도로 조율하고 있으며, 미국도 한국 외환시장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가능성에 대해 “그건 연준(Fed)의 소관이지만, 내가 의장이라면 한국은 이미 싱가포르처럼 통화스와프를 가졌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 싱가포르의 스와프 한도는 600억달러 수준으로, 한국이 요구한 ‘무제한 스와프’에는 미치지 않지만 유사한 외환 안정 장치 도입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한미 협상의 마무리 단계에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6일 워싱턴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직접 담판에 나섰다.
이번 회담은 이달 말 APEC 정상회의를 앞둔 사실상 마지막 각료급 협상으로, 양국이 정상회담 전후 투자 양해각서(MOU) 서명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관세 인하와 투자 확대를 맞교환한 이번 협상의 성격을 감안할 때, 외환 안정 장치 확보와 합리적 투자 구조를 동시에 관철시키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보고 있다.
만약 미국식 ‘현금 선투자 모델’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향후 프로젝트별로 대규모 현금 투입 요구가 반복돼 국내 외환시장과 기업 자금 운용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제조업 부흥(MASGA·Make America’s Shipyards Great Again)’ 전략과 맞물려 한국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등 공급망 전반에서 한국의 기술력과 투자 여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관세 완화와 투자 유치를 동시에 추진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산업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이 ‘무리한 요구는 협력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했고, 미국도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 타결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에 주목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중 갈등 장기화 속에서 한미 공급망 협력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며 “이번 협상이 원자재·에너지·조선 등 전략산업 전반에 걸쳐 정책 불확실성 완화와 투자 심리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번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 완화되고 한국의 수출 경쟁력 회복에도 긍정적 신호를 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협상이 결렬될 경우 외환시장 불안과 수출 차질 등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재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국익을 지키면서도 시장 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