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17년간 1500점 무단 기부받아… 기부금품법 위반 논란

경북도 감사 ‘주의’ 조치만...솜방망이 처분 비판 불가피...지정기탁서·기부심사위 전무...관리·세제 혜택 문제도 우려

2025-09-09     손주락 기자
▲ 기사와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영남경제 자료

한국국학진흥원이 1500점에 이르는 기증물품을 받는 과정에서 지정기탁서를 제출받지 않고 기부심사위원회의 심의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기부금품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상위기관인 경북도 역시 감사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관련 규정과 절차를 준수하라는 ‘주의’ 조치에 그쳐 제 식구 감싸기 형태의 솜방망이 처분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경북도의 출자·출연기관인 국학진흥원은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발전을 위해 국학연구 및 국학자료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수집·보존 업무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고문서, 목판, 현판, 서화 등 국학자료를 기증받고 있다.

문제는 최근 경북도 감사에서 2009년부터 현재까지 약 17년의 기간 가운데 총 1493점의 기증물품을 수령하면서 기부자로부터 지정기탁서를 제출받지 않고 후속 절차인 기부심사위 심의 또한 누락했다는 점이다.

기부금품법 제5조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및 출자·출연기관은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지만 사용용도와 목적을 지정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경우에 한해 기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가 ‘지정기탁서 제출’과 ‘기부심사위 심의’인데 엄밀히 따져 이러한 절차가 배제됐다면 기부금품 접수에 흠결이 있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기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국학진흥원은 이미 17년째 장기간에 걸쳐 1500점에 이르는 다량의 물품을 무단으로 기부를 받았고 기증물품에 대한 사용용도와 목적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방치되고 있다.

행정 전문가 A씨는 “지정기탁서와 기부심사위 심의 과정은 해당 기증물품이 행정목적에 필요한지, 이해관계는 있는지, 자발적인 기부인지 등을 면밀히 따져 접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차단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해당 기증물품이 기관에서 접수해 관리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기관의 용도에 맞게 사용이 가능한지 등을 따지며 불필요한 보존·관리비용을 줄이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고 전했다.

세제 혜택 측면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정기탁서에는 기증물품에 대한 가치를 표기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평가도 기부심사위에서 하는 만큼 이 절차가 누락되면 가치가 제멋대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학진흥원은 영수증을 발급하는 과정에서 현재까지 기부금 외 기증물품에 대해서는 가치를 인정해준 바가 없다고 밝혔는데 기부받은 1500점에 대해 영수증 자체를 발급해주지 않았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 및 출자·출연기관이 기부금품을 모집하거나 이러한 방식으로 기부를 받은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지정기탁서와 기부심사위는 기증물품이 모집이 아닌 자발적으로 기부됐음을 증명하는 서류이자 절차인데 이것이 전부 누락됐기에 넓게 해석해 자발성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이 법에 의해 처벌될 수도 있다.

국학진흥원 관계자는 “기증 과정에서 제시된 문제처럼 절차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면서도 “경북도에서 현재까지 누락된 기증물품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이 없었고 앞으로는 절차를 준수하라고 조치했다”고 전했다.

행정 전문가 A씨는 “이미 기부받았으니 괜찮다는 형태로 넘어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게 된다”며 “전수조사를 통해 일괄적으로라도 기부심사위의 심의를 받는 작업이 향후 보존·관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