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주요도로 차선도색 신기술 적용… 명분도 절차도 허점투성이
국가 중요 행사 앞두고 검증도 안 된 신기술 도입 모험 ‘무책임’...‘부득이한 사유’로 절차 무시… 시공업체 실적 없어 품질도 의문
경주시가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주요 도로정비에 한창인 가운데 일부 구간에 적용된 신기술·특허 공법이 되려 적정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신기술·특허공법 선정을 통한 공사 계약의 경우 특정 기술 보유 업체가 해당 공사를 독점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매번 특혜 시비가 따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관련 예규를 통해 적용 대상과 선정 절차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데, 경주시의 이번 차선도색 공사의 경우 관련 규정을 무시하고 임의대로 적용하거나 위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이 사업이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위한 명목으로 추진되는 사업인 만큼 공사기간 관리와 분명한 품질 확보가 최우선 돼야 함에도, 검증되지 않은 공법을 적용해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준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공법 선정 배경에 대한 의혹마저 일고 있다.
문제의 구간은 북경주IC(천북면)~경주IC(율동)까지의 도로로, 경주시는 지난 3월 이 구간에 ‘돌출형 차선도색’ 공법을 적용키로 최종 결정하고 공법 선정을 위한 절차를 거쳐 4월 경 A사의 ‘상온경화형 도료와 원문양 돌기조성 차선도색장비에 의한 노면표지공법’이 최종 선정됐다.
이 공법 선정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경주시 교통행정과는 “APEC을 앞두고 도로 포장과 차선 도색을 새롭게 하는 과정에서 경찰청 관계부서로부터 ‘돌출형 차선도색’ 도입을 검토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검토 결과 반사율 면에서 개선될 것으로 기대돼 적용키로 결정했다”며, “특정 업체 밀어주기 등의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 말했다.
하지만 의혹과 별개로 경주시의 신기술 공법 도입 배경은 행안부의 예규 상 적용대상 기준에 포함되기 어려워 애초의 도입 배경부터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행안부 예규(지방자치단체 입찰 밀 계약집행기준)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신기술·특허공법 적용은 “해당 공법 적용 시 명백한 예산 절감·공기단축의 효과가 있거나 계약목적물의 완성 및 기타 부득이한 사유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경우 적용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결국 △예산 절감효과, △공기단축 효과, △기타 부득이한 사유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는 뜻인데, 경주시가 이번에 선정한 공법의 경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예산 절감효과의 경우 경주시의 이번 공사 내역서를 확인한 결과, 기존 융착실 일반 차선도색에 비해 단위면적당 단가가 약 3.5배 높은 수준이어서 되려 예산 낭비 지적이 나올 정도다.
공기단축 효과의 경우 전체 구간을 기술사용협약을 맺은 특정 단일 업체가 공사를 독점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여서 차선도색 업체의 일정에 전체 도로정비 사업 일정이 좌지우지 되는데다, 단위면적당 시공 속도 역시 일반 융착식에 비해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다.
실제 차선도색 시공 업체의 시공 일정 조율 난항으로 인해 공사 초기 많은 구간에서 차선도색이 이뤄지지 않은 ‘검은 도로’ 상태가 장기간 지속돼 많은 방문객과 시민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특히 공사기간에 많은 비가 내린데다 역대 최다 규모로 치러진 화랑대기 유소년축구대회로 인해 평소보다 많은 외지인들이 경주를 방문했었기에 시민들은 대부분 초행길이었을 방문객들의 안전사고를 걱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교통행정과 담당자는 “이번 신기술 공법 도입 배경은 예규 상 ‘기타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며, 구체적으로는 APEC 행사를 앞두고 반사도 향상 및 교통사고 예방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물론 방문할 해외 정상 및 관계자들에게 더 눈에 띄는 차선을 선보이기 위해 도입키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주시 설명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실시되는 공사에 검증되고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한 공법이 아닌 신기술을 도입하는 ‘모험’을 한 것을 두고 ‘부득이한 사유’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행정”이라며, “APEC 행사와 신기술 공법 적용이 어떤 연관이 있어 ‘부득이한’ 일이 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단일 업체와 독점 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업체 역시 신기술 공법 사용협약을 맺은 지 채 1년에 불과해 시공 실적도 일천한 상황이라 숙련도를 장담할 수 없어 품질이 제대로 나올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