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미국 50% 철강·알루미늄 관세 확대와 한국 산업의 위기

②미국 보호무역주의, 정치적 배경...美 ‘관세 폭탄’의 정치학…트럼프 행정부, 대선 앞둔 ‘노동자 표심’ 겨냥

2025-08-19     강신윤 기자
미국이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 407종에 대해 50% 고율 관세를 전격 발표한 배경에는 단순한 산업 보호를 넘어선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집권 후 불과 수개월 만에 ‘초강력 보호무역 카드’를 꺼내든 것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전형적인 ‘노동자 표심 잡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번 조치가 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미시간 등 ‘러스트벨트(Rust Belt)’ 지역 유권자들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철강·자동차·기계산업이 발달했지만, 지난 수십 년간 값싼 중국산과 외국산 철강 유입으로 일자리가 급감한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미국 산업을 되살리겠다”며 철강·자동차 노동자들의 표심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실제로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러스트벨트의 지지가 당락을 갈랐다.

워싱턴의 한 통상전문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실질적 경제 효과보다는 상징적 정치 효과가 크다”며 “50% 관세는 미국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의 일자리를 지켜주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는 이번 조치의 근거로 ‘국가안보’를 내세웠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르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이 과도하게 수입돼 미국 산업기반을 위협할 경우 고율 관세 부과가 가능하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는 이를 ‘정치적 보호무역’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EU와 한국, 일본 등 동맹국까지 일률적으로 관세 폭탄을 맞으면서, 실제로는 안보가 아닌 미국 내 정치·경제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232조 발동 이후 미국 내 철강산업 고용 증가는 미미했지만, 제조업 전반의 원가 상승으로 소비자 부담만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해석은 ‘협상용 카드’라는 시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고율 관세를 선언한 뒤 양자 협상을 통해 상대국에 더 큰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실제로 한국은 2018년 232조 조치 당시 철강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고율 관세를 면제받은 바 있다.

당시 한국은 연간 철강 수출 물량을 2015~2017년 평균의 70% 수준으로 감축하는 대가를 치렀다. 이번에도 미국이 우방국들을 압박한 뒤 추가 협상 테이블에서 반도체·배터리, 디지털 무역 등 다른 현안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조치는 미국 내 철강·알루미늄 업계 로비와도 직결돼 있다. 미 철강협회(AISI)와 알루미늄협회는 올해 상반기부터 파생상품 확대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업계는 “외국산 파생상품이 무관세로 들어오면 1차 소재 관세의 효과가 반감된다”며 정치권에 압박을 가했다.

대선 자금을 둘러싼 이해관계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캠프는 러스트벨트 기반 철강·자동차 업계로부터 막대한 정치 자금을 받아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조치가 철저히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치·경제적 딜”이라며 “트럼프식 ‘정치적 관세’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동맹국들의 반발이다. 한국과 일본, EU는 이번 조치가 사실상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무력화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한국무역협회는 “한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은 미군 무기 체계와 산업 공급망에도 기여하고 있다”며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국을 겨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성명을 냈다.

하지만 미국은 대선 국면에서 동맹국 반발을 크게 개의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식 외교는 철저히 국내 정치 중심”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9월 또 다른 업계 요구를 반영해 추가 품목 확대를 예고했으며, 대선이 다가올수록 더욱 강경한 보호무역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물론 세계 철강·자동차 업계가 미국 대선의 ‘정치 무대’ 위에서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