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4천억 투입해 ‘장기연체채권 소각’ 프로그램 신설

113만명 대상…“도덕적 해이 차단, 파산수준 채무만 소각”

2025-07-06     강신윤 기자
▲ 금융위원회 현판. ⓒ영남경제 자료 

정부가 7년 이상 장기 연체된 소액 채권을 대거 소각하는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한다. 코로나19 이후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악화된 금융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기 위한 조치다.

5일 금융위원회는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4천억원을 투입, ‘장기연체채권 소각 프로그램’을 새로 신설한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7년 이상 장기 연체된 5천만원 이하 채권을 일괄 매입한 뒤 소각하거나 상환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는 이번 조치로 113만4천명의 채무자가 보유한 총 16조4천억원 상당의 장기연체채권이 정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채권은 대부분 채무자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방치된 채 금융회사 회계상 ‘무의미한 자산’으로 남아 있었던 부실 채권이다.

특히 금융위는 이번 소각 프로그램이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이나 도덕적 해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파산에 준하는 수준으로 상환 능력이 전무한 채무자에 한해 소각한다”며 “정밀한 소득·재산 심사를 통해 사실상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부채만 매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박, 사행성 업종과 같은 비생계형 채무는 매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구체적으로는 사업자등록번호를 통해 유흥업종에 종사한 소상공인 채권, 주식·코인 투자 등으로 인해 발생한 금융투자업권 채권은 소각 대상에서 배제된다.

앞서 발표된 초안에서는 업종 제한이 없었지만, 탕감 대상의 타당성을 둘러싼 여론 반발을 반영해 기준을 손질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채무자의 경우에도 지원 범위는 제한적으로 설정된다. 금융위는 “2013년 국민행복기금, 2020년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 사례를 참고해 영주권자 및 결혼이민자 등 지원의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범위로 선별 적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추경안에는 장기연체채권 소각 외에도 채무조정과 관련된 추가 지원책이 함께 담겼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7천억원, 채무자대리인 선임지원 사업에 3억5천만원이 각각 편성됐으며, 총 1조1천억원 규모의 예산이 국회 본회의를 통해 전날 통과됐다.

한편, 장기연체 소각과 새출발기금 양쪽 모두에서 배제될 수 있는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2020년 4월 이전에 폐업한 일부 소상공인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별도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있어 해당 대상자들의 상환 부담 경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장기연체채권 소각 프로그램은 2013년 국민행복기금 이후 10년 만에 이뤄지는 대규모 채무정리 정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는 단기적 재정 투입을 통해 중장기적으로는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과 포용성을 제고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