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향산 김병관((鄕山 金丙寬) 선생, 아버지께서 생전에 남긴 유지(遺旨)를 기리며

아버지께서는 내게 늘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고 말씀하셨다. 두 전직 대통령 흉상 제막을 통해 아버지의 말씀에 부응하고자 했다.

2023-11-01     이정택 기자
▲ 향산 김병관 설립자 모습. ⓒ향산교육재단

2023년 10월 10일 포항 중앙고등학교에서 거행된 행사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날 행사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제5대~9대를 역임한 박정희 대통령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황교안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의 회장(제44대 국무총리)과 문무일 사무총장이 내빈으로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학교와 교육재단에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흉상을 설치한 것은 이례적이다.

두 역대 대통령의 흉상을 설치한 사람은 ‘향산교육재단(鄕山敎育財團)’의 향산(鄕山) 김병관(金丙寬) 설립자다.

필자는 오늘날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두 대통령임에도 흉상 설치를 한 김병관 설립자의 생각과 설치 배경을 듣고자 포항 중앙고로 발길을 옮겼다.

필자를 처음 본 김병관 설립자는 당신을 망백(望百, 나이 91세의 별칭)의 노인이라 칭하며 따뜻한 두 손을 꼭 잡으며 환대해 주었다.

김 설립자는 향산교육재단(포항중앙고·중앙여고) 설립자, 향산장학회 설립자, 요양시설 유락원(遊樂園), 상락원(常樂園) 설립자, 대명공원묘원(大明公園墓園) 이사장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김 설립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설립자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김 설립자는 흉상설치에 앞서 당신이 살아온 배경과 아버지에 대한 회상으로 말문을 열었다.

▲ 이승만 초대 대통령 흉상 ⓒ향산교육재단
▲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 ⓒ향산교육재단

“나는 2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부친께서는 1910년 한일합방 후 지금의 경주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셨다”며 “부친은 일본의 무단통치 시절 헌병대에 체포돼 고문과 구타를 당해 귀가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64세의 연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농사를 지으며 은둔생활을 하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는 늘 김 설립자에게 한 말씀이 있었다고 말문을 이어갔다.

“부친께서는 늘 내게 ‘넌 내 귀가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며 “나는 이 말씀을 눈물로써 굳게 약속하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김 설립자는 지금의 포항 동지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고 싶었지만 농사를 짓는 시골에서는 엄두가 나질 않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21세가 되던 때 선생님으로부터 교재를 받아 교재를 만들어 팔면서 대학 진학금을 마련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원양어선을 건조하는 대선조선에 입사했고 이후 극동석유에 입사해 창의성을 살려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령, 아스팔트를 생산하고 공업 윤활유를 생산하는 등 1970년대 회사의 임원으로 활동했다고 되뇌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와 2만평의 땅을 개간해 옥토를 만들었고 지금의 학교법인 향산교육재단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이후 중앙고·중앙여고를 설립했고 향산장학회를 설립해 후학 양성에 힘썼고 사회복지법인 유락원과 상락원를 설립해 시민들의 복지에도 힘썼다.

김 설립자는 이런 활동을 수신(修身)이라 칭했으며 나아가 치국(治國)을 하기 위한 노력에도 힘썼다.

경북도의회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한 경험이 있고 이때 교육위원회 의장을 역임하며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했다고 말했다.

김 설립자는 수신부터 치국까지 사람으로 태어나 이룰 만큼 이룬 사람이라 자평하면서도 부친의 유언을 항상 되뇌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제막식에 참석한 내빈(좌 두번째 황교안 전 총리) 좌1:김호근 교육 삼락회 회장, 좌2:황교안 전 총리 좌3:김병관 설립자 ⓒ향산교육재단

필자는 김 설립자에게 부친의 유언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알고 있는데 이미 훌륭한 사람이 되신 것 같은데 아직 못다한 것이 있는지 질의했다.

김 설립자는 “부친께서 생전에 남긴 유지는 단순히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 훌륭한 사람으로서 해야 한다”고 말하며 “나는 이번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흉상 제막을 통해 생전에 아버지의 말씀에 부응하고자 한다”고 답변했다.

김 설립자는 시대에 따라 역사적 인물은 재조명 내지 재평가를 받는다고 말하며 그럼에도 위대한 인물도 공(功)과 과(過)가 있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주석이었던 등소평은 모택동에 대해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고 했던 것을 상기하며 두 전직 대통령의 과(過)만 부각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이전은 조선시대라는 왕조시대 즉, 군주국가였음을 강조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의 새 지평을 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승만 대통령의 공은 과보다 높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불평등조약이라고 불리우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처한 현실을 고려한 최선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 두 전직 대통령 흉상 앞에서(좌:김호근 삼락회 회장 중:김병관 설립자 우:정주영 전 포항중앙고 교장) ⓒ향산교육재단

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경제부흥을 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과 추진, 새마을운동 등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고 평가했다.

장기집권에 따른 역사의 재평가도 있지만 공이 과보다 많고 지금의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한 것에 대한 평가는 인정하고 두 전직 대통령의 흉상을 설치하고 업적을 기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설립자는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전쟁과 보릿고개를 경험해보지 못했다”며 “망백의 나이로 피란생활과 보릿고개 등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 시대에는 그 방식이 최소한 악(惡)이 아닌 선(善)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그 시대로 돌아가서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선뜻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며 “오늘날 이념의 문제로 대한민국 국민이 둘로 양분화돼 적만도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설립자는 우리가 대통령으로서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은 시대가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도울 뿐이지 강요해서는 안된다고도 말했다.

과가 없는 사람은 없다며 등소평이 모택동에게 한 말처럼 공칠과삼의 말을 되뇌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설립자는 “대한민국이 영원하고 번영을 위한 것이 나의 삶이자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두 전직 대통령의 흉상 제막은 아버지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자 대한민국 번영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