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포항이 낳고 포항을 빛낸 선비 의사(儒醫) ‘석곡 이규준’

북쪽에 이제마가 있었다면 남쪽에는 이규준이 있었다

2023-06-07     이정택
▲ 석곡 선생 초상화. ⓒ포항시청 문화예술과

조선 말기 한의학자로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 선생과 함께 석곡(石谷) 이규준(李圭晙) 선생이 있다.

동무 선생은 태음인, 태양인, 소음인, 소양인이라고 잘 알려진 사상체질(四象體質)의학을 창시한 한의학자다.

동무 이제마 선생은 일대기를 다룬 TV프로그램이 방영돼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동무 선생과 비견되는 인물이 또 있는데 조선 말기 한의학의 한 획을 그은 유의(儒醫) 석곡 선생으로 이를 잘 표현한 내용을 멀지 않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에 위치한 동해석곡도서관 전시관 벽면 한편에 ‘북쪽에 이제마가 있었다면 남쪽에는 이규준이 있었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석곡 선생의 위상을 잘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석곡 기념관 조감도. ⓒ포항시청 문화예술과

석곡 선생은 조선 말기의 유학자이자 의학자로 1855년(철종 7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생을 마감했다.

석곡 선생은 오늘날 포항인 영일(迎日)에서 태어났다. 좀 더 자세히는 동해면 임곡리에 태어나 유년기는 보다 남쪽에 위치한 석리(石理)에서 보내며 석곡이라는 호를 가지게 된다.

근대 한의학의 양대산맥인 동무 이제마 선생이 사상의학을 제창했다면 석곡 이규준 선생은 부양론(扶陽論)을 제창했다.

부양론은 생명의 근원을 양기(陽氣)로 보았고 양기는 항상 부족하고 음기(陰氣)는 남아도는 것이 만병(萬病)의 원인으로 봤다.

병의 원인을 음이라고 봤기 때문에 양의 기운을 북돋워야 병이 낫는다는 이론을 펼친 것이다.

양기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부자(附子)와 인삼(人蔘) 등을 치료제로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부자를 많이 애용해 ‘이부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고 전한다.

당시 부양론은 원나라 주진형의 ‘자음강화(滋陰降火)’ 이론이 조선의 의학이론을 지배하고 있었던 시대에 반하는 이론이다. 즉 부양론은 당시에 비주류였음을 의미하고 있고 시대를 앞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자음강화이론은 화(火)를 내리기 위해서는 음(陰)을 길러야 한다는 이론으로 양(陽)보다는 음(陰)을 중시한 것이다.

▲ 석곡기념관 전시 모습. ⓒ포항시청 문화예술과

석곡 선생의 대표 의학저서인 ‘의감중마(醫鑑重磨)’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을 거듭 연마한다는 뜻을 지니며 부양론과 기혈론(氣血論)에 서로 통하는 부분은 동의보감을 활용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의감중마 해제((解題)에서 석곡 선생은 동의보감이 중국 원과 명나라까지 의서를 모두 모아 병과 약을 채록(採錄)한 의학의 바다라고 하면서도 내용이 산만해 주장하는 바가 알기 어렵다고 비판했다고 전한다.

특히 석곡 선생은 동의보감이 자음강화이론과 마찬가지로 양이 아닌 음을 중시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석곡 선생은 선생이 제창한 부양론에 맞춰 동의보감에서의 치료와 처방에 관해 재정리를 한 것이다.

석곡 선생은 한의학자로서 알려져 있지만 젊어서는 유학자로도 활동했다.

우리가 선생을 선비 의사, 유의(儒醫)라고 지칭하는 이유다.

대구한의대 송의호 교수는 석곡 선생 묘소에서 참배하며 선생의 발자취를 되돌아 봤다.

▲ 석곡기념관 전시 모습. ⓒ포항시청 문화예술과

석곡 선생의 마지막 제자 조규철이 썼다고 알려진 비문에는 ‘나의 마음은 황제와 노자처럼 유하고 나의 행동은 공자처럼 지키고자 한다’고 새겨져 있다.

이는 공자가 펼친 사상 중 근본인 인(仁)을 실천하자는 것이고 성리학보다는 양명학의 영향을 받았다.

또 당시 지역세를 형성한 퇴계학파가 아닌 기호학파를 이으며 퇴계 선생의 학설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퇴계 선생의 제자인 류성룡의 종택을 방문하는 등의 교류를 보인 면모를 보면 외골수는 아닌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막연히 선생이 제창하고 주장한 이론과 다르다고 해 배척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이론과 학설을 선생이 바라보는 시각에서 재해석·재정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영남에 거주하는 기호학파로서 오늘날 지역색을 강조하고 있는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전히 석곡 선생이 제창한 부양론은 주류(主流)는 아닐지 모른다.

송 교수는 실제 다수의 한의대에서 정규과목으로 넣지 않고 부양론을 따르는 한의사도 소수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런 석곡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잇기 위한 지역 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오는 7월 개관을 앞둔 ‘석곡기념관’이 대표적이다.

석곡기념관은 동해면 도구리 607번지에 위치해 지상 2층 높이의 건물로 6월 완공된다.

포항시는 53억원 상당의 사업비를 들여 석곡 선생의 학문과 저서(목판)를 전시하고 영상을 상영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시실은 상설전시, 기획전시, 체험영상공간으로 나눠 마련되고 상설전시공간에서는 유학자와 의학자로서의 업적을 구분해 구성하고 영상 연출과 게임을 통한 체험형 전시공간으로 마련된다.

또 기획전시공간은 천문학, 수학, 철학 등의 다양한 학문에서 성과를 보인 결과물을 소개하며 체험영상공간에서는 텍스트 인터렉티브 영상 체험의 장이 마련된다.

기념관에 전시될 유물은 경주이씨 익재공파 석동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판목 360여점과 석곡 선생이 집필한 서적 80여권 등 서찰, 문갑, 식기로 구성될 예정이다.

석곡 선생 후손들로부터 기탁 받은 유물은 보존 처리 후 수장고에 반입하고 원본은 수장고 보관, 목판 모형물과 생전 사용 문갑 등이 전시될 것으로 보인다.

원본은 개관 후 필요에 따라 기획 전시될 전망이다.

▲ 석곡기념관 전시 모습. ⓒ포항시청 문화예술과

포항시는 석곡기념관 개관을 앞두고 학예사를 신규 채용하고 직원, 자원봉사자를 배치해 관람객들이 원활하고 안전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전시뿐만 아니라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좌를 운영하고 유·초등생의 현장과 체험학습, 방학 중 학생체험, 가족 주말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어 지역민들이 석곡 선생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시대의 비주류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학문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한의학의 양대산맥으로 우뚝 선 자랑스런 포항인 석곡 선생.

이제는 우리가 숨겨져 있는 전설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포항을 넘어 전국민이 아는 전설이 되도록 노력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