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재난과 인류]필라델피아 재향군인병 사건 - (1)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 명예교수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도시다. 1776년 이곳에서 미국 독립선언이 이루어졌고, 1790년부터 1800년까지는 연방정부의 수도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동부 지역의 13개 주는 1781년에 와서야 연방을 만들었고, 독립전쟁의 영웅 조지 워싱턴이 1789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함으로써 비로소 미국은 하나의 국가체제를 갖추었다.
초대 대통령의 취임과 근무는 뉴욕에서 시작되었으나, 수도는 독립선언이 있었던 곳이어야 한다는 합의에 따라 1790년 필라델피아가 미국의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연방정부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수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필라델피아에서 집무를 시작했던 1790년부터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고 이전을 준비했다. 새 도시의 위치는 13개 주의 지리적 중간이며 물길을 따라 서부 진출이 용이한 포토맥 강변으로 했다. 수도 이전은 제2대 존 애덤스 대통령에 의해 1800년에 이루어졌으며, 수도명은 1799년 사망한 초대 대통령과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워싱턴 D.C.(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로 정했다.
필라델피아는 10년 남짓한 수도였지만 지금도 자유의 종을 비롯해 미국 독립을 상징하는 역사적 유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매년 독립기념일에 많은 행사가 거행된다. 미국 독립 200주년이었던 1976년 7월 4일을 전후로 필라델피아에서는 많은 행사가 열렸는데, 그중 하나로 7월 21일에서 24일까지 벨레뷰-스트래트포드(Bellevue-Stratford)라는 고급 호텔에서 재향군인회가 개최되었다. 그런데 이 회의에 참석한 4,400여명 중 255명이 7월 22일부터 8월 3일 사이에 심한 고열과 기침을 수반한 폐렴 증세를 보였고, 그중 34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는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역학 조사에 들어갔다. 환자들이 모두 악성 폐렴 증상을 보였지만, 조사 결과 폐렴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스터리 질병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조사를 끝내면서 병의 원인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박테리아가 호텔 실내공기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박테리아(병균)를 이 사건과 관련지어 레지오넬라 뉴모필라(Legionella pneumophila)로 명명했다. 병균 이름에 사건이 일어난 필라델피아 재향군인회의 의미가 Legion(군부대) ella(세균) pneumo(폐) phila(필라델피아)로 들어가게 되었다. 레지오넬라균은 일반적으로 강이나 호수, 저수지 등에 매우 낮은 농도로 서식하지만, 적당한 온도가 주어지면 개체 수가 갑자기 늘어난다. 사건 당시 레지오넬균은 에어컨 냉각수에서 대량 번식하여 환기 장치를 통해 호텔 내부의 실내공기를 오염시킨 것이다.이 사건은 당시 미국 유명 주간지 『뉴스위크』지, 『타임』지 등에서 표지 기사로 게재될 만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유는 미국 독립 200주년 행사로 세계 이목이 필라델피아로 집중된 상태에서 미스터리 병의 의학적 규명이 처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병의 의학적 명칭은 Legionnaires disease(군부대 공기 질환), 또는 Legionella(레지오넬라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사건에서 따온 ‘재향군인병’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밝혀진 재향군인병은 이후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세계 곳곳에서 자주 발생하는 질병으로 보고되고 있다. 사건 이전에는 독감, 폐렴 등으로 오인되거나 원인 모를 질병으로 지나간 것이었다. 이후 계속 증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만 연간 8,000~18,000명이 이 병에 걸리며, 이 중 약 12%가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에어컨 바람, 또는 목욕이나 샤워 시 레지오넬라균을 함유한 수돗물 증기가 호흡을 통해 폐로 들어가는 것이 원인이다. 보건당국은 인체 간 전염은 이루어지지 않으나 지금까지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약 70%가 여행 중에 이 병에 걸렸고, 일부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에서 발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건강한 사람은 레지오넬라균에 저항력이 있으나,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발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담배를 피우거나 폐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에서 발병률이 높다.
지난 2016년 6월 미국의 유명일간지 워싱턴 포스터(Washington Post)는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5년 동안 발병률이 인구 10만 명당 0.42명에서 1.62명으로 무려 4배나 증가했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자료를 기사화했다. 2000년 이후 이렇게 급증한 이유는 고령 인구와
여행자 증가, 건물 노후화로 인한 부실 수도관 증가, 그리고 검사진단의 증가 등을 들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인하여 수도관이나 물탱크 등에서 레지오넬라균의 좋은 서식 조건을 제공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