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포항시, 학산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으로 다시 시민 품에
학산, 나루끝, 학도의용군 그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
포항시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학산천 생태하천복원사업이 동빈내항부터 순차적으로 순항하고 있다.
학산천의 복원사업은 나루끝, 우현 도시 숲으로부터 시작해 포항중,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롯데백화점을 지난 동빈내항까지 이어진 900m의 복개하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사업이다.
학산천은 과거부터 포항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포항의 4대 하천 중 하나로 지리적으로 포항의 중심인 중앙동과 학산동을 나누는 경계이며 학산천에서 포항의 수많은 역사가 함께 흐르고 있다.
학산천 일대는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포항시의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삶을 살아가는 터전을 이루고 있다.
학산천의 나루끝 일대는 80년대 양학동에서 용흥동, 우현동을 잇는 우회도로가 나기 전, 포항과 경주와 영덕, 울진 등지와 삼척, 강릉으로 통하는 유일한 7번 국도의 길목으로 교통의 요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현재 롯데백화점 일대는 학산역이 동해중부선의 종착역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과거 나루끝 일대는 철로가 가로질러 깔려 있어 기차까지도 왕래하던 포항의 중심지로 상권, 주거권, 학권이 밀집돼 빼곡한 도심을 이룬 곳이었다.
현재는 포항의 도심이 남쪽 상도동 대잠동과 북쪽으로 장량동 양덕동으로 많이 팽창돼 학산천 일대는 과거 20~30년 전 도심으로 찬란했던 영광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과거 학산천을 가로지르던 철길은 어느덧 우현도시숲으로 바뀌며 지역민들의 산책로로 변모했으며 롯데백화점, 선린병원, 초중고등학교 등의 인프라가 낡은 도심속에서도 포항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학산천 주변에는 학산천과 뗄 수 없는 ‘학산의 유래’, 과거 물길의 중심지였던 ‘나루끝’, 학도의용군의 포항전투 격전지였던 ‘포항중’ 등 역사적 의의가 있는 장소로 포항의 소소한 역사를 함께 이어오고 있다.
최근 포항시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무분별하게 복개돼 사라져 버린 학산천을 다시 복원하며 지리적, 역사적, 측면에서 과거 학산천 일대 구도심의 영광 재현이 기대되고 있다.
◇학산의 유래
학산은 학산동 33-1번지에 위치해, 구도심의 뒷동산으로 수도산, 삼각산과 함께 학산동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 시대부터 산의 형국이 학 세 마리가 날아가는 형상과 같아 삼학산이라 불렸으며, 삼학산에서 학산으로 자연스레 바뀌어 불렸다.
학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역과 지역을 흐르는 하천의 이름까지 학산동, 학산천으로 만들며 과거 포항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학산은 포항의 중요한 상징으로 학산의 명칭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학산의 뒷산 일대가 울창한 소나무 많고 근처 여러 호수가 있어 학의 서식처가 돼 길조로 보고, 학산리라 불렀다는 사람도 있으며, 산들 사이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학산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역 명칭의 다양한 설화뿐만 아니라 학산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까지 전해져오며 학산 일대가 포항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역이었는지를 새삼 유추하게 만든다.
학산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옛날 어느 바닷가에 있는 조그만 못가에서 한 아낙네가 소복단장을 한 채 빨래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갑자기 크고 흰 학 한 마리가 아낙네의 빨랫터 옆에 날아와 앉았다고 한다.
이에 깜짝 놀란 아낙네는 엉겁결에 빨랫방망이로 날아와 앉은 학의 머리를 때려 버렸는데 학이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지는 순간 난데없이 동쪽 하늘에서 세 마리 학이 날아가는 형상을 한 커다란 산이 날아와 그 아낙네를 덮고 멈춰 섰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 산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 자리에 남게 됐으며 이는 현재 확산이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로 학산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형성됐으며, 죽은 학의 영을 기리듯 학의 무리가 떼를 지어와 학들의 서식처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는 학산에는 울창했던 소나무숲도 사라졌으며, 세 마리 학을 닮았던 산의 형세도 오랜 세월 동안 깎이고 깎여 지금은 학의 머리 형상만 남아 쓸쓸함을 더하고 있다.
◇나루끝의 유래
포항의 지역민들이 자주 부르는 나루끝은 우현동·학산동·대신동의 경계 지점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포항 지역민이라면 어린 시절 나루끝이라는 지명을 듣고 한 번쯤 의아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과거 나루끝은 형산강의 지류인 여울천이 흐르며 각종 선박이 왕래했던 나루터로 과거 교통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복개천과 같이 땅으로 메워져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에 나루끝의 지명을 감응할 수도 없다.
나루끝이 메워져 지금의 형태를 띤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형산강 원류의 제방축조 이후 하천의 유량이 감소해 바닥이 드러난 벌이 매워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제방축조 이전 형산강의 지류는 세 갈래로 중심지류인 칠성천은 효자방면에서 양학동을 거쳐 흘렀으며, 남쪽지류는 냉천은 연일읍, 북쪽지류인 학산천은 나루끝에서 학산을 따라 동빈내항으로 모여들었다.
일제강점기 형산강의 원류에 둑을 쌓고 물길을 현재와 같이 돌려지자 형산강의 세 지류는 조그마한 소하천으로 변모돼 나루의 제 기능을 잃게 됐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변모한 곳은 과거 온갖 선박과 뱃사람, 이를 이용하는 이용객이 몰려 성시를 이룬 나루끝이었다.
나루끝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품과 수산물이 모여 내륙지방으로 수송되는 포구의 출입로 지역민과 이용객들이 성시를 이루는 포항의 중심지였다.
나루끝은 형산강의 원류가 막히자 서산과 수도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순식간에 강이 매워져 제일 먼저 강바닥을 드러냈다.
나루끝의 옛모습은 포항의 토박이 노인들만이 그 윤곽을 어슴프레 기억할 뿐 아무도 과거 물길의 중심지였던 시절 영광을 기억하지 못한다.
돌아볼 수 있는 예로 포항의 중심지인 나루끝 주변 현 학산동 경로당에 있는 용담제당에서 매년 동짓달 초이튿날 마을 사람들이 질병과 재앙을 막고 농사와 어획의 풍요를 비는 것 동제를 아직도 지내고 있다.
나루끝의 옛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현재 강폭 10m 정도만 남겨져 땅 밑을 흐르고 있는 형산간의 북쪽지류 학산천이 유일하다.
◇학산천과 함께한 학도의용군
포항의 중심인 학산천 일대는 ‘포화속으로’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포항전투의 격전지 포항여중이 자리 잡고 있다.
포항전투는 6·25 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선을 지지하기 위한 유엔군과 한국군 부산 교도부 전투의 일부로 1950년 8월 5일부터 8월 20일까지 북한군과 접전을 벌였던 전투로 지금까지도 학도의용군의 주요 전투로 분류되고 있다.
포항전투 당시 수도사단의 학도병 87명은 사단장의 보직 변경으로 집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에도 71명은 귀가하지 않고 사단장을 따라 포항으로 내려와 3사단 후방사령부가 있던 포항여중에 주둔했다.
이날 북한군 인민군 766 유격대가 새벽에 포항에 진입해 4시 반에는 학도의용군이 주둔하고 있는 포항여중 앞에까지 쳐들어왔다.
학도의용군은 북한군이 20m 앞까지 다가오기까지 기다렸다 일제히 사격을 시작해 이날 오후 1시까지 격전을 벌였다.
포항여중 전투로 참여한 71명의 학도군 중 48명이 전사하고 23명이 상처를 입거나 실종됐으며 48명의 전사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학도군은 10여명에 불과하다.
사망한 학도의용군은 포항여중 앞에 임시매장됐다가 국립현충원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뒤에 놓인 반구 형태의 화강암 속에 합동으로 안치됐다.
이들이 넋을 기리기 위해 포항의료원 뒤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을 만들었고 포항 여자고등학교 앞에는 학도의용군 6·25 전적비는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