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민둥산보며 키운 ‘원자력 핵공학 박사’의 꿈
카이스트 부총장 시절 테뉴어제로 교수 35명중 14명 탈락시킨 일화
2019-04-24 손주락
총장 접견실에서 만난 장순흥 총장은 60대 중반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10년은 젊어 보일 정도로 동안이었다. 접견실은 장 총장의 이력과 명성과는 달리 크기와 분위기는 소박했다. 장 총장은 인터뷰를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 까지 막힘이 없었다.
포항지진피해와 관련 장 총장은 “한동대 교수인 정상모 포항지진공동연구단장은 포항의 지진 발생이 천재가 아닌 인재라는 것을 꾸준히 밝혀왔다”며 소개하고 “지진불명예 도시를 떨쳐버려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한동대가 지역사회에 일정의 역할을 한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했다.
장 총장은 우리나라는 석유도 나지 않는 에너지 빈국이지만 지금은 OECD 국가 중 전기료가 가장 싼 나라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민둥산에서 전기료가 가장 비싼 나라가 이제는 숲이 우거지고 전기료도 가장 저렴한 나라가 된 것이 원자력 때문이며 원자력으로 인해 쾌적도도 높아지고 레벨도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주)
50여 년 전 한 어린아이가 대한민국의 산들을 보고 생각했다. “왜 우리나라는 벌거벗은 민둥산밖에 없을까?” 땔감으로 모든 나무가 잘린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 아이는 에너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약소국인 우리나라를 원자력 하나로 에너지 강국으로 탈바꿈 시킨데 입지전적 인물인 한동대 장순흥 총장의 이야기다. 본지의 창간호 기념으로 포항의 자랑인 장 총장을 탐방해본다.
▲‘갈대상자’ 마음으로 한동대에 오다
Q.장순흥 총장이 한동대까지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1997년 한동대가 어려울 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교수들이 찾아온 적이 있다. 이때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월 1천원으로 100만인의 후원자를 관리할 전산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이로 인해 꽃동네가 후원서버를 구축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제도인 ‘갈대상자’를 한동대에도 제안한 바 있다. 갈대상자는 어린 모세를 살리기 위해 엮었던 갈대 바구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상징하는 것처럼 한동대도 이러한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 제안하게 됐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특정 기업인이나 부유한 사람이 수십억원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닌 소액이지만 다수가 참여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수의 참여보다 다수가 함께했을 때 더 많은 기도와 더 큰 성원이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인연이 된 한동대는 10년 뒤인 2007년 이사직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이사장 대행과 이사장직을 맡았으며 2014년부터 현재까지 한동대학교 총장을 맡게 됐다.
Q.한동대에 오기 전까지 많은 일이 있은 것으로 안다.
A.한국과학기술원에서 교수부터 처장, 부총장까지 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원자력과 관련된 많은 위원회에서 위원 역할을 맡았다. 한국원자력학회의 회장직과 한국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학생의 경험과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를 국내 최초로 도입하기도 하고 지난 정권에서는 인수위 교육과학분과 위원을 맡으며 당시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 때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교수의 고용을 보장해주는 테뉴어제를 도입할 때다. 카이스트 교학부총장이자 인사위원장 시절, 이 제도로 35명 중 14명의 교수를 떨어트린 적이 있다.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국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동대의 10대 프로젝트로 지방명문대학을 꿈꾸다
Q.어떻게 한동대를 지방대의 성공신화로 만들어 나갔는지 궁금하다.
A.세상을 바꾸는 10대 프로젝트라고 말하고 싶다. 10대 프로젝트는 지역발전, 통일한국, 아프리카, 창업 활성화, 스마트 파이낸싱, 차세대 ICT, 차세대 자동차 및 로봇, 지속가능한 에너지·환경, 차세대 의식주, 건강·복지 프로젝트가 있다.
10대 프로젝트란 세상의 발전을 위해 아이디어가 중요하며 이 아이디어가 신산업을 창출함으로 기획력 있는 인재를 육성 및 배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 명의 큰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을 일할 수 있게 한다.
또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기술과 금융이 접목되기에 먹거리도 된다. 10대 프로젝트의 기본 철학은 연구와 교육을 연계하고 분리된 분야를 융합하며 이러한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는 데 있다. 10대 프로젝트도 사실상 모두 연계된 셈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학생이 가장 중요하다. 한동대는 학생을 위한 교육 이념을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다. 한동대는 학생들이 설계를 전공하면 없는 전공도 만들어낼 수 있으며 학생의 양심을 믿는 무감독시험은 이미 대표적인 자랑거리기도 하다.
Q.이번 지진 규명도 한동대 10대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평가되고 있는데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A.바로 지역발전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이 없으면 대학도 없다. 지역이 잘돼야 대학도 잘된다. 과거에는 한동대도 지역과 소통이 잘됐다고 보기 힘들었는데 근래에 와서 지역을 위해 이바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열심히 뛰고 있다.
한동대 교수인 정상모 포항지진공동연구단장은 포항의 지진 발생이 천재가 아닌 인재라는 것을 꾸준히 밝혀왔다. 경주의 자연지진은 깊이가 10km가 넘었는데 포항지진은 깊이가 4km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경주보다 규모가 낮은 5.4 지진임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엄청났던 것이다. 한동대 교수가 지역을 위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낸 것에 뜻 깊게 생각하며 포항에서도 불명예를 떨쳐버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인공지진을 밝혀준 이진한 교수에게도 감사드리고 싶다. 이 교수는 경주에서 원자력안전 프로젝트를 통해 지진계 200여 개를 두고 경주지진의 완벽한 분석을 위해 측정 중에 있다 포항지진을 감지했다.
나 역시 전문위원장으로 같이 있었는데 경주지진을 분석하기 위하 데이터가 있으니 지진이 발생한지 이틀 만에 인공지진이란 것을 확신해 발표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확신으로 정상모 교수도 연구단장으로 적극 추천할 수 있었다.
▲포항지진이 인공지진이라고 밝혀내는데 한동대가 일조하다
Q.그렇다면 포항지진연구단을 출범시켜 포항이 인공지진인 것을 밝혀내는데 장 총장이 실질적인 기여를 한 셈인데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달라.
A.나 또한 동일본대지진으로 발생된 후쿠시마 원전사고 조사 때 해외전문가 5명 중 한 명으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국내전문가 300명은 중요한 질문일 때 그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못했지만 해외전문가들은 모두 답변했다.
해외전문가들은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포항시 역시 연구단을 꾸리기 위해 많은 리더들을 모았지만 조사단이나 연구단을 만들어 잘된 적이 있냐는 비판이 당시에 많았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는 연구단의 가치를 믿었다.
연구단은 여러 이해관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모 교수를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었고 안전도시 포항으로의 재도약 기회가 된 것 같다.
Q.한동대가 지역을 위해 노력하는 반면 R&D과제 등의 실적이 다른 대학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R&D 특구지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한다면.
A.한동대도 이미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서 R&D는 시작하고 있고 투자도 많이 받았다. 프로바이오틱스 분야와 광학 레이저, 배터리 분야 등 가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분도 있다.
한동대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창업과 R&D 강화이다. 이 부분은 직장과 연계되고 결혼 출산과도 연계된다. 한동대는 이 부분을 강화해 궁극적으로는 생명존준운동을 전개해나갈 계획이다.
앞으로 포항시의 정책도 대학생을 많이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생 및 졸업생이 이곳에 계속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인구 감소를 해결할 수 있고 좋은 인력을 유치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Q.원자력 최고 석학으로서 한 마디 해 달라.
A.민둥산을 보고 에너지를 떠올린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석탄도 석유도 사실상 에너지 강국으로 위치하기에는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이다. 그러나 지금은 OECD 국가 중 전기료가 가장 싼 나라에 해당한다.
민둥산에서 전기료가 가장 비싼 나라가 이제는 숲이 우거지고 전기료도 가장 저렴한 나라가 됐다. 이 모든 것이 원자력 때문이다. 원자력으로 인해 쾌적도도 높아지고 레벨도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전환정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지만 원자력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키워온 만큼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Q.장 총장이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과 영남경제에 바라는 것을 말해 달라.
A.학생들에게는 데이터와 인적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는 나 자신이 세상에 일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2가지로 손꼽았다. 정확한 정보를 갖고 올바른 소통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둘을 갖고 현실 문제를 다뤄야 한다. 가치 환산은 어렵지만 수백조원에 달하는 포항의 지진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말이다.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논문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항상 물어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그렇기에 잡히지 않은 것에 치우치지 말고 우리 주위의 현장을 둘러봐야 하는 것이다. 현실을 다루는 인재가 돼야 한다.
영남경제에는 세 가지를 요청하고 싶다. 일자리, 결혼·출산, 안전하고 깨끗한 경북·포항이다. 특히나 지금 같은 현실에 결혼의 가치를 올리는 일에 힘써주면 좋을 것 같다.
인구가 감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이는 학벌보다 직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동대에서도 복지전공 교수들과 학교 차원에서 도울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중에 있다.
번창하는 영남경제가 되길 기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