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상습적으로 폭력에 시달려온 국가대표 출신 23세 선수가 세상을 등졌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가 소속팀이었던 경주시청 감독과 팀닥터, 선배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지난달 26일 숙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더욱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최 선수가 생전에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경북체육회,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등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어느 곳도 최 선수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 선수는 관련 기관에 폭력 사실을 신고하고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몇 달이 지나도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고 남긴 마지막 카톡은 최 선수의 분노와 고통, 체념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꽃다운 나이의 딸을 잃은 가족의 심정을 생각하면 온 국민이 마음이 아플 것이다.

최 선수가 남긴 녹취록과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 선수는 욕설은 기본이고 온갖 폭행, 폭언, 협박, 성희롱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받아왔다. 가해자들은 체중감량을 해야 하는데 콜라를 주문했다는 이유로 20만원어치의 빵을 사 오게 해 강제로 먹였고, 감독에게 알리지 않고 복숭아 1개를 먹었다고 구타했다고 한다.

체중 조절을 못 했다고 사흘을 굶기는가 하면 슬리퍼로 뺨을 때리기도 했다. 공개된 녹취록에는 폭행 당시의 참혹한 장면이 생생히 담겨있다. 심지어 임시로 고용한 물리치료사 팀닥터와 선배는 최 선수에게 금전을 요구해 이들 계좌에 거액의 돈이 이체된 것으로 드러났다.

선수들에 대한 빈번한 폭력 행사는 우리 체육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선수가 지도자로부터 체벌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선수들은 어린 나이에 합숙 훈련에 들어가 폐쇄된 환경 속에서 도제식 훈련을 받는다.

체육계 내부에서 철저한 반성과 각성을 통해 뿌리박힌 병폐를 없애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도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최 선수의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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