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지금 미국은 코로나19에 겹쳐 인종차별에 대한 시위가 일어나고 시위대의 일부가 안타깝게도 폭동·약탈자로 변모돼 있다.

이는 미국에 친척들을 둔 사람들만이 아니라 국내외 정치경제를 염려하는 시민들에게도 걱정을 줄 수밖에 없는데, 며칠 새 사태가 좀 진정되는 듯하다니 다행이라고 보며, 더 이상 큰 피해 없이 안정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쉽게 폭동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이렇게 써도 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존재하는데, 이 시위가 이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한 의사표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 노예로 끌려와 모진 어려움을 견뎌내고 지금에 이른 것이 미국의 흑인들이다. 세월이 바뀌어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인종차별은 분명 미국사회 이곳저곳에 존재한다.

우리 한국동포들도 소수인종 중 하나로서 분명히 차별을 받고 있다. 물론 지금은 직접적이라기보다는 간접적인 차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차별은 뿌리가 깊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미국이 요즈음 코로나진단·치료체계부실로, 그리고 인종차별 관련 이슈 및 폭동으로 고통 받는 것을 본 우리들로서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류 역사상 그렇지 않았던 때가 언제였는가? 지금이 그래도 가장 낫게 발전된 상황인데 그러한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20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확진되고 10만명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포항을 고향으로 둔 미국 뉴저지 주에 살던 한 재미교포는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 가서 재산도 많이 모았고, 자식들도 의사로 키워냈고, 그 지역 시의원으로 활동했는데, 불과 일주일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증상이 있어 병원에 갔더니 심하지 않으니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는데, 그날 저녁인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분 형님들이 포항에 살기에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미국이 의료체계가 왜 이 지경인지는 필자도 많이 겪어 보았다. 일반적인 진료야 예약을 하고 치료하고, 의료보험이 비싸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내주면 되니까 괜찮은데, 문제는 의료보험이 비싸서 제대로 된 보험을 가지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과거에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정책을 통해 의료보험 없는 이들을 싸게 보험 들게 해주려 노력했지만 그것도 저렴치 않아서 많은 이들이 들지도 못하고 유야무야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번처럼 팬데믹 상황에서 응급적인 의료체계가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대도시 폭동은 흑인차별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한 흑인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너무 심하게 다루어져 사망했기에 흑인 커뮤니티가 우리도 제대로 살 권리 내지 제대로 대우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는 시위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물론 백인이라고 모두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부유하고 힘 있는 이들은 백인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은 흑인과 히스패닉들이다. 이들은 다운타운 슬럼지역에 집중돼 살고 있으며, 그 지역의 범죄율도 높기에 경찰들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이들을 비교적 과하게 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더구나 흑인들은 과거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왔기에 그 피해의식이 심하고 백인들도 이에 대해 좀 미안해하는 기류가 있기는 하나, 이러한 사회에 내재된 인종차별과 빈부차별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는 힘든 것 같다.

한국동포들은 소수인종이면서도 소수인종으로 받는 혜택, 예를 들어 대학입학혜택 등도 받지 못하면서 백인들만이 아니라 다른 소수인종들로 부터도 직간접적인 차별과 때로는 질시의 눈초리를 느껴야 할 만큼 미국생활이 쉽지는 않은 것이다.

거의 30년 전 LA폭동 당시 LA시정부에서 도시계획가 및 주택정책전문가로 근무했던 필자는 LA폭동 직후 해당지역을 조사하기도 했고 그 전후의 한국동포사회와 언론, 다른 인종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잘 기억하고 있을 뿐더러 그 몇 년 후 대지진이 강타했을 때 상점건물이 무너지고 불에 탄 한국인들을 많이 보았다.

차별도 차별이지만 미국사회에서 제대로 적응 못해 살았기에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많다. 하지만 그러한 사건들 이후 한인사회도 리더를 키우고 시민권을 얻어 투표에도 참여하는 등 주류사회에 파고들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번에 발생된 경관의 흑인에 대한 폭력대응과 이와 관련된 시위와 폭동·약탈을 보면서, 그들의 사회에 쌓인 응어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 것 같다.

이 폭동·약탈이 어서 빨리 끝나야겠다. 단기적으로야 관련자들이 사과하고 법적인 처벌을 받으며 일시적 봉합이 된다지만, 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 많다.

이로 말미암은 재산 및 정신적 피해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사회적 타격들이 함께 복구되어야 할 것인데, 그 타격이 범세계적으로 대단히 커서 짧은 시일 내에 제대로 회복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장기적으로는 이 사회가 인종적으로 차별 없는 사회가 되어야, 교외의 ‘네이버후드’가 지나치게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게이티드 커뮤니티’들만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소득과 인종에 관계 없이 섞여 사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정말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 필자도 예측하기 힘들다. 이러한 폭동·약탈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고 코로나19처럼 많은 이들, 특히 가난한 소수인종들이 더욱 피해를 받을 팬데믹 전염병도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으니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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