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주말이면 가끔 환호해맞이공원을 찾는다. 바닷가에 넓게 자리 잡은 이곳은 포항의 도심공원으로서 산등성이가 그대로 보전되고 등산길이 살아남은 멋진 곳이다.

한쪽은 바다에 면해있고 다른 쪽은 시가지와 접하는데, 보통은 시가지 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올라 광장과 넓은 운동장을 지나고 경사진 잔디광장을 지나 포항시립미술관에 들른다.

건물규모가 꽤 크고 검정 톤의 인조석 건물이다. 혼자도 오지만 가끔은 외국인 학생들을 데리고 온다. 거기서 전시 중인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감상도 하고 설명도 해준다.

요즘은 코로나19 영향으로 필자도 지난 몇 주 주말에는 집에만 머물렀는데,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다.

하지만 ‘2미터 사회적거리’를 유지하고 갇힌 공간을 피하기 위해 이번에는 미술관 앞쪽만을 둘러보고 옆으로 뚫린 경사진 아스팔트길 따라 산 정상으로 향했다. 사람도 많지 않지만 마스크를 했고 어떠한 경우에도 2미터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이곳 정상에 오르면 영일만이 멀리까지 내다보인다. 초봄의 날씨가 좀 걸어도 덥지는 않지만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영일만과 포스코와 시가지를 감상한다. 맑은 날씨임에도 좀 대기가 흐린 것은 안개가 낀 것인지 미세먼지 탓인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높은 전망대가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요즈음 이곳도 닫혀있어서 아래로 난 산길을 따라 공원을 한바퀴 돌기로 했다. 이러한 크기의 도심공원이 자연적인 구릉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포항으로서는 큰 축복이다.

이 공원이 없다면 포항의 도심은 정말 삭막하고, 도시열섬현상(Urban Heat Island)도 심하고, 시민들로서도 중요한 갈 곳을 잃는 것이다. 교외에는 이 같은 구릉과 숲이 존재하지만 도심숲 내지 도심공원의 가치는 더욱 더 큰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은 새로 개발된 장량동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그 사이에는 아직도 큰 키 소나무 수림대가 잘 보존되어 있다. 캠퍼스도 꽤 넓고 미개발지에는 소나무와 갈참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그래도 등산로가 여기저기 얽혀 있어서, ‘이곳에 산짐승이 살까?’ 의심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9시 좀 지난 시간에 캠퍼스 가장자리 도로에 차를 세우고 나오는데, 웬 사슴 한 마리가 잠시 서 있는 듯 하더니 내 앞 20미터 전방을 껑충껑충 건너뛰어 오른쪽 소나무 숲으로 사라진다. 아, 지난 25년 지내면서 캠퍼스에서 낮시간에 본 첫 사슴이다.

몇 년 전 영일만항 배후산업단지가 겨우 개발될 당시에 한 동료교수가 밤에 그쪽 길을 운전해 가는데 전방에 한 어미 멧돼지가 조그만 아기돼지들을 거느리고 지나고 있어서 차를 멈추고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즈음 이 부근 숲이 이곳저곳 파헤쳐지고 등산로가 거미줄 같이 얽혀져 있어서 산 짐승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의심하고 있었다.

필자가 어릴 때만해도 시골은 물론이고 서울교외 야산에 토끼, 노루, 꿩 등이 매우 많았다. 가끔은 논두렁에서 뜸부기도 울었고, 살쾡이가 동네 닭들을 채가기도 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서울근교에 단체로 송충이 잡이를 갔다가 한 친구와 숲에서 큰 부엉이와 마주치고 큰 울음소리와 날개 짓에 놀라기도 했는데, 그곳이 둥지였는지 알 두개가 있어 하나를 몰래 훔쳐왔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땐 어려서 잘 몰랐었다.

인구가 많아지고 도시가 커지면서 주변 자연생태계는 파괴된다. 짐승들은 크기에 따라 영역의 크기도 다르다. 영역이 파괴된다는 것은 먹이사슬이 파괴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지금 한국의 여러 도시에 멧돼지가 출몰하는 것도 영역이 파괴되고 먹을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주공간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꾸미면서도 자연생태계를 보전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걷는 주변 숲 트래킹이 그곳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에게는 멸종을 야기시키는 대단히 해로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래서 도심공원과 도심숲이 중요하고 해변산책길이 중요한 것이다. 지정된 트래킹코스가 아니라면 함부로 야산를 드나드는 것이 생태계를 위해 좋은 것이 아니다. 되도록이면 도심공원을 이용하고 지정된 산책길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혹자는 ‘인간이 중요해 산짐승이 중요해’ 하고 따지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간이 더 중요하지만 일반 동식물의 생태계보전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요즈음 코로나19 영향으로 대부분 국민들이 여가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밖으로 나오게 되면, 마스크를 끼고, 손과 얼굴을 중심으로 위생에 주의하며, ‘2미터 사회적거리’를 유지해야 함 등이 꼭 지켜야할 사회적 약속이다.

그래야만 전염성 강한 코로나바이러스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사실 이번 도심공원 나들이도 이 시국에 적절하지 못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어서 빨리 학교가 정상적으로 열리고 위축된 경제가 제자리 잡아야하는 데,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이 전염병의 위세를 걱정만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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