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내내 한국에 머무르면서 미국에는 1년 두 번 방학 중 고작 2~3주 머무르는 것이 필자의 연중스케줄이다. 어떻게 보면 직장의 바쁜 일과를 떠나 미국에서 잠시 휴식을 즐기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필자가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여러 달 떠나 있는 동안 식구들 사는 집에 지붕이든 담장이든 조금씩 수리할 일이 생기고, 거라지 청소, 나무와 화초 손질 등, 크지 않은 집이지만 지은 지 오래되기도 하고 앞뒤마당이 꽤 넓어서 손볼 일들이 많다.

이곳은 필자가 박사과정 끝나가던 1988년 말에 구입한 작은 집이다. 전문가들 말대로 ‘좋은 동네 가장 싼 집’, ‘Location Location Location’ 원칙대로 구입했다 하지만 이집 구입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돈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집값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이곳에 살면서 아이들을 좋은 공립학교에서 안전하게 키워낸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고칠 것들이 많았다. 단독주택이니 앞뒷뜰 잔디와 나무들 손보기도 큰일이었다.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미국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요즈음 TV를 보니 한 재미동포 아이돌 가수가 1990년대 잠시 데뷔했는데, 한국어가 서툴다고 구박도 받고, 너무 튄다고 인기를 얻지 못해 도로 미국으로 돌아간 일도 있다.

30년 후인 요즈음 갑자기 앨범이 크게 인기를 얻어 한국으로 돌아가 다양한 공연과 인터뷰를 한다고 한다. 그간 플로리다에서 식당서빙 등 잔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 왔다고 한다. 이 남자분 말고도 재미동포출신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한 여자 가수는 성량이 매우 풍부해 ‘작은 거인’ 같게도 느껴지는데, 로스앤젤레스 남부지역의 한 마을에서 교역자의 딸로 태어나 좋은 대학에 입학했지만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해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한국에서 가수가 됐다.

한국사람 별로 없는 동네라서 한국어가 매우 서툴렀었고, 대학에 들어가서 한국인 친구들과 써클활동 등을 하며 한국어를 익히기는 했지만, 지금의 한국어 실력은 한국에 와서야 고생 끝에 어느 정도 숙달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 온 교포들은 오래전에는 대부분 좀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위해서, 혹은 학문적인 꿈을 품고 미국에 온 경우가 많았다. 얼마 후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보는데, 아이들이 커가고 직장생활 혹은 작은 사업들이 괘도에 들게 돼 그대로 눌러 앉게 된 경우가 많다고 본다.

요즈음도 이와 같은 이유가 많다고 보지만 대기업에서 미국지사로 파견 나온 경우도 많고, 석박사과정 이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초중등때부터 미국식교육을 선호해서, 혹은 테니스, 피겨스케이팅 등 체육인재 양성을 위해서도 많이들 온다고 보인다.

코리아타운에 오면 한국과 같이 한국어로 다 통용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좀 과장이고 영어를 구사해야 생활이 편하다. 많은 이들이 남녀노소 영어배우기에 힘써서 생활영어정도는 다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어린세대들은 학교에서 영어로 배우니 한국어가 서툴러진다. 어릴 때부터 완벽한 이중언어 구사를 위해 여건을 만들어주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분들도 많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학교에서는 영어로 공부를 하고, 잘해서 대학에 가야하고, 친구들과의 대화도 영어이며, 졸업 후 좋은 직업을 잡기 위해서도 영어를 언어만이 아니라 문화까지도 익숙해져야할 것인데, 부모들은 한국어와 한국문화에만 익숙하고 밤늦도록 일을 해야 하는 이민생활이기에 자녀들과 대화의 시간도 많지 않고 말과 생각이 잘 소통되자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가족들로부터 가장 불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이들의 중고교·대학시절을 함께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커피도 마시고 음식도 나누면서 대화를 하고 함께 시간 보내기에 애를 쓴다.

다행히 아이들은 영어는 물론이고 한국어도 자연스럽게 듣고 말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물론 영어가 편하지만 부모와의 대화에서 그리고 한국의 친척 및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한국말을 잘 구사하며 읽고 쓰기도 가능하다.

그래서 휴가 중에는 식구들과 집에서 직접 불고기, 떡국, 카레라이스 등을 함께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인근 식당에도 자주 가는 편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것들 중 하나가 고기양이 많고 다양한 브라질리언 스테이크하우스나 맛있고 양도 많은 멕시칸레스토랑이었는데, 요즈음은 한국음식점에 비빔밥이나 냉국수를 먹으러 가기도 한다.

어쩌다는 아침 일찍 함께 맥도날드에 가서 브랙퍼스트를 먹고 커피도 한잔 마신다. 물론 일찍 일어나 교회도 가고 브랙퍼스트 후 아직 시간이 이르면 구경삼아 주변 동네를 드라이브하기도 한다. 물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위해서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도 한국말을 쓰고 한국문화 속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니 세대 간의 단절 한국사회와의 단절이 야기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교통수단만이 아니라 첨단정보통신의 발달로 세상이 좁아지고 있다. 이제 한국의 국력도 커져서 영어만이 아니라 한국어를 잘하는 것도 세계시장에서 큰 장점이 돼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사회도 한국적인 전통들을 유지해 가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문화들을 잘 받아들이고 잘 조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에는 한국어에 서툰 우리 동포들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불평을 해도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그래도 힘이 되는 것은 이들 해외동포들일 것이며 이들과의 네트워킹이 더욱 중요한 시대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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