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의 청년은 모든 희망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남아 있지 않고 사는 일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음식을 살 돈 조차도 없어 절망의 끝까지 간 청년은 죽기로 작정하고 낡은 옷에 묶인 벨트를 끌러 천장에 메달고 의자를 받치고 벨트를 목을 걸고 의자를 찬 순간, 벨트가 끊어지면서 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누가 봤으면 엄청 쪽팔리고 우스꽝스러웠을 거란 생각에 한참을 주저 앉아 있다가 펑펑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배가 고파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찐하게 밀려 왔습니다.

무엇일까, 나를 이토록 사아~하게 하는 그무엇은?....

그러자 바깥 풍경이 달라져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리와 나무, 자주들렀던 가게, 지나가는 사람들, 익숙한 소음들, 사람들의 음성들...

주위 모든 사물들이 다시 다른 의미로 다가와 보이기 시작합니다.

청년은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강하게 믿고 있다. 삶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관계 없이 사랑할 만한 것이다'라고 되뇌입니다.

이 극단적인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로 남아 있는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아더 루빈스타인 (1887~1982)' 의 이야기 입니다.

생각과 개념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것들도 새로움으로 다가 옵니다.

늘 깨어 있고 새로움을 추구하는것이 굳이 예술인이 아니더라도 보통의 거저 그렇게 사는 우리 보통의 사람들, 삶의 한 방법이지 않나 감히 생각 해보았습니다.

어느 신문 칼럼에서 읽은 글귀 인데요. '생각이 못 박히면 구석기 인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가을이 깊어졌습니다... 혹 책 한권 읽으시지 않으시렵니까?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한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어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장석남 님의 시 '그리운 시냇가'





요즈음 바닷가 바위에 기식하고 있는 '둥근바위솔' 입니다.

야생화가 자꾸 줄어든 이유 중 하나가 '어디에 뭐가 좋타'라는 이상한 치료법으로 인한 것이 상당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이러다간 아스팔트가 정력에 좋다하면 우리나라엔 포장도로가 없어질 듯합니다. 으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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