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25년전 포항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직장인 흥해읍 남송리에서 10여분 바닷가 길을 운전해가면 오도리 길가에 ‘작은 행복’이라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시내까지 가기도 쉽지 않아 손님이 오거나 하면 이곳까지 드라이브해서 독특하게 버섯모양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커피나 음식도 시키고 회의도 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도시가 생기고 길도 좋아졌고 갈 곳도 많아졌다.

그 당시 필자는 포항도심 인근의 언덕배기에 위치한 대단위 고층아파트단지에 전세로 살았었는데,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친구나 손님들이 근처에서 온다면 아파트 입구 근처 2층 상가에 위치한 조그만 다방에서 만나고는 했었다. 일하는 분들은 주인 포함 두어 명뿐이었는데, 친절하기도 하고 사람이 많지도 않아서 자주 들렀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저녁 8-9시쯤 ‘뭐 하십니까?’하고 인근에 와서 전화하시는 필자보다도 10여세 연장의 포항분이 계셨다. 그 당시 방금 미국에서 귀국하여 물정을 모르는 필자에게 이 당시 만나던 이분들이 포항살이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한 7년 후 교외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하게 되었는데, 직장인 학교도 가까워지고 살기는 편했으나 주변에는 산과 논밭이었다. 동네 들어가는 입구에 다행히 의원과 약국이 있어서 자주 이용했지만 딱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여기서 또 7년을 살았는데, 책도 많아지고 짐도 많아져 좀 더 큰집을 찾다가 현재 사는 신도시 고층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고,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동안 포항살이에 익숙하게 되고, 포항도 많이 바뀌었다. 인구는 늘지 않았으나, 시대 자체가 첨단화되어가므로 삐삐가 등장했다가, 무전기만한 핸드폰을 쓰고 있다가, 이제는 첨단스마트폰으로 바뀐 세상이 되었다. 서울 가고 인천공항 가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동네였는데, 포항-서울 KTX가 개통되어 날씨 관계없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서울을 다녀올 수 있게 되고 외국도 좀 더 용이하게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필자에게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초등, 중고등, 대학친구들이 있었는데, 인터넷과 와이파이 활용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은 서로 자주 연락을 하고 모임들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접촉범위가 서울과 그 주변 정도로 한정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방도시에 사는 필자로서는 비행기를 타지 않는 다음에야 5시간 걸리는 서울행이 쉽지 않았는데, 그 후 2시간여로 단축되어도 여전히 자주 가게 되지 않음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정보통신과 교통기관이 발달되어도, 학자들은 흔히 ‘지리적 거리’가 사라졌다고들 이야기해도, 그것은 업무 등에 있어서나 그렇다는 것이지 사람이 접촉하고 사는 범위는, 물론 상대적인 변화가 있었다고는 해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정적인 비용도 문제지만 ‘심리적 거리’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또한 우리의 현대적인 삶 자체가 좀 더 개인주의적이 되고 좀 더 스케줄에 맞춘 타이트함으로 변해서 그 테두리를 벗어나기 힘든 탓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활은 이미 이 지역에 고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인 캠퍼스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다. 오후 늦게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가지만, 잠시 나와도 동네의 잘 가는 단골 커피숍 정도에 들를 뿐이다. 지난 10여 년간 지역신문에 칼럼을 게재하고 있는데, 지역에 관련된 주제들이 대부분이다. 아시는 분들 중 ‘칼럼을 지역신문에만 내지 마시고 중앙지에도 좀 내세요.’ ‘주제가 대부분 지역개발에 관한 것인데, 중앙의 정치경제 관련 글은 왜 안 쓰시나요?’ 묻기도 한다.

명절 때가 아니면 부모형제가 있는 서울에 잘 가지도 못한다. 그 이외 서울을 간다면 해외출장시 잠시 들리는 경우들이다. 생각에 따라서는 참 재미없게 산다고 할지도 모르겠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시대도 변하고 개인차가 인정되는 사회이니 이러한 사항들로 하여금 행복과 불행을 판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말이 막바지인 일요일 저녁, 저녁식사 후 운동 삼아 동네를 돌다가 단골 커피숍 ‘니나’에 들어가니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하며 반가워한다. 근 10년 만에 마주친 분이다. ‘저는 10년전 서울로 떠나신 줄 알았어요.’ ‘교수님 살이 좀 붙으셨네요?’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반갑기도 했다. 이분도 젊을 때 포항으로 이사와 오래 살았고 아이들은 장성해서 서울에 살기에 함께 떠난다고 작정하고도 그냥 이곳에 머물러 있었던 모양이다. ‘이웃도 있고 다니는 교회도 있고 떠나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분도 필자와 마찬가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쳇바퀴 같아도 그런대로 지낼만하고, 주변의 익숙한 것들, 서로의 관계라기보다는 그냥 일방적인 익숙함이라 하더라도 끊어내기 힘든 것이 우리네 삶인 것 같다.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물론 세상이 변하여 포항에서도 모든 것을 듣고 보고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된 탓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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