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칼럼】영덕·영해·해변의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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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문 칼럼】영덕·영해·해변의 정취
  • 영남경제
  • 승인 2019.10.0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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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문 한동대 교수
포항시를 떠나 7번국도를 타고 칠포, 월포 등을 지나 영덕군으로 가는 길은 여름철, 특히 러시아워에는 달전 근처부터 붐비고 정체도 있지만 청하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지나 보경사 입구를 지나면서 한가해진다.

7번국도는 한동안 내륙을 달리는데 화진해변을 지나면서부터 바다와 만나게 된다. 화진휴게소는 7번국도상의 가장 크고 전망좋은 휴게시설 중 하나였을 텐데 지금은 다른 용도로 공사 중이다.

이곳을 벗어나며 영덕군으로 접어들며 풍경이 바뀌기 시작한다. 횟집, 대게식당, 모텔 등 용도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짙푸른 바다가 내다보인다. 멀리 보이는 해변마을, 고깃배, 등대 등이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곧 장사해변을 지나는데, 커다란 수송선 한척이 바닷가에 정박돼 있다. 이는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 개시일에 맞춰 이곳에서 2천700톤급 LST ‘문산호’를 통해 상륙작전을 벌였던 중고생 학도병들이 대다수였던 772명 전투원들의 전공을 기념해 세워진 LST모양의 기념관이다.

좀 더 가면 화려한 호텔과 식당들이 줄지어 있고 삼사해상공원입구가 나온다. 계속해서 고개를 넘어서면 강구면으로 제법 시가지가 큰데, 강 건너 해변지역이 대게거리로 전국에 알려진 곳이다.

이 해변길을 따라 운전해 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내륙 7번국도를 택했다. 좀 더 가니 영덕군청이 위치한 영덕읍이 나온다. 필자가 가끔 방문하는 곳도 이곳인데, 오늘은 영해면에 일이 있어 계속 차를 몰았다.

영덕군은 영덕읍, 강구면, 영해면 등 9개 읍면을 지니고 있으나 인구는 4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도 오래되고 지금도 매년 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물론 이는 영덕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이 있고, 아름다운 해변이 줄지어 있고, 산에서는 그 귀한 송이버섯이 채취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주민들은 경북 동해안권의 중심도시인 포항의 학교, 병원, 상업 및 문화시설, 그리고 교통시설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많은 포항시민들도 영덕군 일원을 찾는다.

영덕군의 역사는 삼한시대로 거슬러 간다. 그 당시 오십천 상류에 자리를 잡아 취락형태를 이루면서 점차 그 하류로 옮겨왔던 야시홀이 해안을 장악하고 있던 예의 세력 하에 놓여 있다가 신라에 병합됐다.

그 북부에 위치한 영해는 우시국이라는 소국이었는데, 신라의 삼국통일 후 우시국은 유린군이 되고 야시홀은 야성군이 됐다. 고려 태조23년에 야성은 영덕, 유린은 예주로 바뀌었고, 예주 1310년 영해부로 고쳐졌으며, 고려말기에 격심한 왜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영해읍성과 축산성을 축조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영해는 병마절제사를 겸한 부사가 있는 진이 되었고, 도호부가 되어 영덕현을 거느린 채 동해안을 침범하는 왜적을 막는 중추구실을 했다. 그 후 1895년 영덕현과 영해부가 다 같이 군이 되었다가 1914년 영해군이 영덕군에 통합되었다.

10여 분 차를 달린 후, 기름을 넣기 위해 7번국도를 벗어나니 그곳이 조선말 의병을 일으켜 일제와 싸웠던 신돌석장군의 고향마을 근처였다. 그곳에서 구.국도를 타고 5분여 가니 영해의 중심인 면사무소 건물이 보였다.

면사무소는 새로 지어진 산뜻한 사각형의 기와 얹은 2층 건물인데, 과거 동헌건물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역사가 오랜 만큼 오래된 마을, 특히 양반마을들이 많은데 그 대표적인 것이 ‘괴시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오래된 기와집들이 100여 채나 모여 있고, 고려말에서 조선시대에 유명했던 정치인·학자들의 고향 집들도 있다. 면사무소 인근을 좀 돌아보다가 우리는 좀 늦은 점심을 하기로 하고 바닷가로 향했다.

여름 바캉스가 끝난 후고 주말도 아닌 터라서 바닷가는 한적했다. 그러나 짙푸른 바다와 주변 경치의 아름다움에 우리는 한동안 감탄사를 내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잘 차려진 해산물 요리로 점심을 하고 커피도 한잔 마신 후 우리는 이번에 바닷길을 따라 남으로 향하기로 했다.

바닷가 길은 마주치는 풍경들이 정말 한 폭의 그림들이었다. 맑고 푸르른 바다와 시원한 바람. 밀려오는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혀 흰 포말을 일으킨다. 바닷가 절벽과 산에는 푸른 소나무들이 무성하다.

우리는 풍력발전소 앞 해변전망대에서 잠시 주변을 관망하다가 다시 차를 몰아 삼사해상공원 근처까지 갔다. 거기 해안 도로변에 아는 횟집에 들렀는데, 그 집은 어머니가 제주해녀 출신으로 50여 년 전 이곳에 와서 물질을 하다가 동네총각과 결혼을 해 정착했다는 집이다.

몇 년 전에도 이곳 갯바위에서 낚시질을 하며 고래치 등 물고기들을 제법 잡았던 기억이 난다.

현재 영덕은 인구는 작지만 ‘대게’로 유명하고, ‘송이’산지로 유명하고, 줄지어 이어지는 아름다운 바닷가로 유명하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는 하지만 관광수입 자체가 크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포항에서부터 월포를 거쳐 영덕의 고래불 등으로 이어지는 이 해변들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동해선 철도와 고속도로가 삼척까지 개통되고, 언젠가는 북한으로도 연결될 것이므로 많은 이들이 부산, 울산, 대구 등지에서 찾아올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역소득 증대를 위해 적극적인 개발을 주장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잘 지켜내는 것도 장래 영덕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므로 환경친화적이면서도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시설과 상품개발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포항권의 한 축으로서 포항도심, 교외거점, 울릉도 등과의 네트워크 및 상생발전도 더욱 중요해지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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