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청소하고 간 오늘 아침은 참 맑고 청아하고 햇빛에서 무언가 모를 향기로운 냄세가 나는 듯합니다.

심어둔 김장 배추가 한껏 푸른잎을 거들먹거리네요.

바람에 삐딱하게 쓰러진 돼지 감자는 이제서야 정신 차리고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습니다.

동네 사과 밭에는 얼라들 머리만한 굵은 사과들이 득실득실거리며 한껏 햇빛을 즐기고 있고 뻘쭘한 늙은 농부는 하는 일 없이 바쁜 척합니다.

오래되고 익숙한 사는 일들이 어쩐지 오늘은 새로워질 것 같은 기분으로다가 헐렁하고 편안한 옷을 입은듯 여유가 보입니다.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우리는 이런 맑은 빛으로 위로를 받고 그다지 위대하지도 않고 서글퍼지지도 않는 사는 일들을 가볍게 만나봅니다.

그래... 오늘은 이 빛으로다가 맑고 곱게 그리고 청아하게 하루를 살아보자.

그리고 우리 이웃한 사물과 사람들에게도 차 한 잔, 이 맑은 빛과 같이 나누어 보자.

고마워, 오늘 하루.



그리고 9월이 왔다
산구절초의 아홉 마디 위에 꽃이 사뿐히 얹혀져 있었다
수로를 따라 물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누군지 모를 당신들 생각으로
꼬박 하루를 다 보냈다
햇살 곳곳에 어제 없던 그늘이 박혀 있었다
이맘때부터 왜 물은 산은 멀어지고 생각은 더 골똘해지고
돌의 맥박은 빨라질까
왕버들 아래 무심히 앉아 더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이윽고 저녁이 와 내 손끝 검은 심지에 불을 붙이자
환하게 빛났다
자꾸만 입안에 침이 고였다

고영민 시인의 시 「9월」




전 주말에 왕복 800키로를 달려 인제대암산 용늪 해발약 1,200미터를 다녀 왔습니다.

야사모 전국 모임이 거기에서 있었거든요...

'사람이 꽃이다'

그야말로 야생화에 미친 사람들이 모여서 정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민통선 부근이라 사전예약과 허가가 없이는 갈 수 없는 곳이라 오는 길은 그야말로 폭풍 속으로 7번 국도를 해쳐 달려 무사히 귀포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여정이었습니다.

오늘 야생화는 '무릇' 입니다.

이명으로는 물구, 물굿, 물구지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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