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우리나라는 바깥보다 안의 적을 더 중시했다.

그리고 맨날 패거리끼리 물어뜯고 꼬집고 갈굼하고 때로는 죽음까지도 아무런 죄책감없이 소모되었다.

임란 때 얼빠진 임금 선조는 통신사의 보고도 무시하고 "전쟁은 없다"는 소수의견만 듣고 신하들도 그리 인지하고 좋은 말만 했다.

20일만에 한양을 점령 당하고 도성을 탈출하자 백성들은 궁궐에 불을 질렀다.

신의주까지 도망간 이 비겁한 임금은 쪽팔리게 명나라에 망명을 구걸한다.

한 사람이라도 왜적과 싸워야 할 그 난리에 맨날 성리학을 내세워 패싸움하던 조정 대신들은 의병과 충신들을 파직, 귀양, 살해 마저 서슴치 않았다.

그 와중에도 임금에게 딸랑거리며 의주까지 따라간 신하들에게는 포상이 주어졌다.

그래도 류성룡, 율곡, 이순신 같은 현실주의자들이 이 전쟁을 마무리 한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전사하고 류성룡은 같은날 파면 당하였고 진정한 영웅들 즉, 피흘리고 전국 곳곳에서 싸운 의병장이나 의병들은 그냥 소리없이 초야에 묻혀 버렸다.

그리고는 약 30년 뒤 병자호란을 또 겪어야 했다.

500년 전 역사의 기록이 이러할진데... 우리는 얼마나 이런 일들을 되풀이 해야 하나.

100년 전 만해도 우리는 또 36년을 고스란히 받쳤다.

뭔지는 잘 모르지만 등골이 오싹하는 일들이 작금에 초단위로 생성된다.

나라가 침탈 당했던 500년 전, 100년 전이나 오직 안의 적과 이익만을 위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난 좌, 우도 모르지만 앞으로 내 아들들이나 딸들의 세상이 무참해질 것이라는 예감을 차마 떨어 버릴 수가 없다.

우리는 정말 독해야 한다.




오래 묵은 벚나무 한 그루가
비오는 날 천천히 목숨을 내려놓았다
아름드리 맺힌 나이테가 빗물을 받아 붉어져
모란 앞에서도 찬란한 꽃이 되었다
꽃 틔워 사람을 후리던 가지는
어디로 잘려 나갔는지 행방이 묘연하고
인장처럼 평생 흙을 쥐고 살던 뿌리조차
먼 동네로 실려가
이제 오롯이 몸통만 남아 간결해졌다
다 헤어지고 나서야
오월 푸른 철, 붉은 말들이
틈을 물고 두런두런 밖으로 나와
한 생애를 금세 적나라하게 펼쳐 놓은
단단하고 결 고운 책 한 권

강수완님의 시조 「나무는 죽어서」



서러웠습니다. 내가 오래된 나무처럼 덩치만 크고 가지와 잎만 무성할뿐 겨우 한다는 것은 그늘만 만들뿐..... 며칠이 지나면 이마저도 할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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