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뭘 잊어 버리는 횟수가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좋고 아름답고 즐거웠던 기억들은 금방 잊어 버리고 억울하고 허폐가 뒤집어 지고 옹골차게 복수(?)를 다짐했던 기억들도 미적미적 잊어 버리게 됩니다.

화장실 댕겨 오면서 옷매무새를 잘못하면 치매 1기라고 항간에 진리같은 소문들이 성성한데...

더군다나 누군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오면 아주 밝게 인사를 하곤 "누구지?"하면서 기억회로를 더듬어 찾아 갑니다.

금방 기억해낼 것 같지만 하루 종일 택도 없습니다.

지인들은 "아이고 그 연식에 마누라 얼굴하고 자식새끼 얼굴만 기억해내도 대단한겨"라고 위로를 해주지만 소설가 김애란 님의 산문 '잊기 좋은 이름'에서 그녀는 말합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눈부신 순간을 맞은 적이 있나요? 저는 여전히 어떤 이름들을 잘 모르고 삶을 자주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실패한 시간과 드물게 만난 눈부신 순간이 담겨 있습니다.

그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여기 적습니다.

오늘 눈부신 순간을 맞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마 흰 사내가 신발을 털고 들어서듯
눈발이 마루까지 들이치는어슴푸른 저녁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마루에 나앉아
밤 깊도록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설탕을 타 마신 막걸리는 달콤 씁쓰레한 것이
아주 깊은 슬픔의 맛이었습니다
자꾸자꾸 손목에 내려 앉아
마음을 어지럽히는 흰 눈막걸리에 취해
이제사 찾아온 이제껏 기다려 온
먼 옛날의 연인을 바라보듯이
어머니는 젖은 눈으로
흰 눈, 흰 눈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초저녁 아버지 제사상을 물린 끝에
맞이한 열다섯 겨울첫눈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나는 다가올 첫사랑을 기다리며
첫눈 내리는 날이면
댓잎처럼 푸들거리는 눈발 속에서
늘 눈막걸리 냄새가 납니다

권형현 님의 시 '달콤한 인생'

어른들은 말씀들을 하시지요.

일년도 깨어놓으면 금방,한달도 깨어놓으면 금방, 일주일도, 하루도 금방이라고 말씀들을 하시지요.

저도 백수가 된지 벌써 오년이 되었습니다.

백수 첫해에는 아직 직장생활 기운이 남아 내가 아직 뭔가를 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만... 이제는 밥 세끼 먹는 게 거의 기적 수준입니다.

부디 댕길때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야생화는 '참바위취'입니다. 고산에 사는 아주 자존심 강한 아가쉬 같은 꽃이지요. 사진은 야사모 회원들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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