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청소년문화재단 정소연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시대에 단연코 인기 있는 장르라면 ‘액션 히어로’물일 것이다.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 속에서처럼 비장하게 나타나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해결사가 어디 없나 생각도 한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아직도 세계의 극히 일부 인 것 같아. 히어로까지는 아니라도 구조자는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이 대사는 현대의 평범한 많은 이들의 위로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히어로를 갈망하지만 나만의 소소한 히어로는 주위의 평범한 친구·동료·가족이 누군가에게는 히어로가 되고,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한창 액션히어로물이 유행하던 시기에 선물 받은 이 책 ‘재인, 재욱, 재훈’은 제목에서부터 일상의 친근함이 느껴졌다. 편식이 심해 좋아하는 작가의 글만 읽었던 터라 정세랑 작가에 대한 지식은 아주 없는 상태였던 것이 안타까울 만큼 이 책은 마음에 쏙 자리 잡았다.

첫 페이지를 넘기고 작가에 대한 호기심에 초록 검색창에 작가이름을 처넣었다. 누가 쓴 책인지는 몰랐지만 익숙하고 낯익은 책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띈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로 많은 리뷰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줄거리를 쫓게 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정세랑 작가에 대한 또 다른 호기심은 잠시 접어두고 펼쳐 들었던 ‘재인, 재욱, 재훈’으로 돌아와 빠져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책 제목이며 주인공인 ‘재인, 재욱, 재훈’은 정세랑 작가 지인들로 실제인물의 이름라고 한다.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는 소설에 실제인물을 가져다 적용시키기에는 큰 위험이 있었을 텐데 소설속의 ‘재인, 재욱, 재훈’은 그들만의 정체성이 뚜렷했다.

모델처럼 늘씬하고 똑 부러지지만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덤덤하게 버텨낼 수 있는 장녀였으며 어딘가 마모되어 여리게도 보이는 딸이기도 한 ‘재인’, 무심하지만 느린 듯 그러나 섬세하고 따뜻한 차남 ‘재욱’, 약간은 염세적이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귀여운 ‘재훈’. 이 삼 남매의 멀고도 아슬아슬한 유대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어느새 미소 짓고 있었다.

대략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둘째 재욱의 출국 전에 휴가를 다녀왔던 삼 남매는 미식가인 재훈의 배고프다는 말과 함께 칼국수를 먹으러 들어갔다. 재훈이 설명하는 오묘한 빛깔의 바지락조개를 먹고 삼남매는 소소한 초능력이 생기는데, 그 초능력은 지구를 부수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친근하고 소소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별로 필요 하지 않을 그러한 능력이었다.

갑자기 초능력은 왜 생긴 것인지,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 것인지, 삼 남매는 각자의 개성에 맞게 상황을 해석해 나갔다. 재인은 귀찮아하면서도 연구원답게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전환시켰다면 재욱은 묵묵히 받아들였다. 이 보잘 것 없는 초능력을 가장 즐거워 한 것은 역시 재훈이었고 삼 남매는 각자 나름대로 초능력을 사용함으로서 생각과 관점에 생기는 변화를 받아들였다.

항상 연구와 화학약품에 약해진 손톱대신에 강인한 강력손톱이 되어버린 재인, 위험요소가 있는곳에 가면 시야에 붉은빛이 생기기 시작해 병인줄 알았던 재욱, 엘리베이터가 재깍 오기만 한다면 지각하지 않을텐데 생각만 하던 재훈에게는 엘리베이터를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

누군가의 설명도 안내도 없이 배달되어온 선물역시 이상한 것이었다. 망가진 손톱깎이가 4개째가 되었을때 save1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재인에게 배달되어온 손톱깎이. 재인은 손톱깎이를 받자마자 자신의 강력손톱을 잘라보고서 쾌감까지 느꼈을 것이다.

붉은 시야의 의미를 깨닿게 되었을 쯤에 재욱이 받은 소포에는 save2 메시지와 레이저포인트. 붉은빛의 의미도 느리게 알아챈 재욱은 선물 역시 대수롭지 않게 그저 가지고만 있었고 반쯤 초능력을 즐긴 재훈은 소포에 들은 열쇠와 save3 메시지를 금방 이해했다.

삼남매가 그 선물들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를 구하고 어떻게 사용하라는 것일까. 메시지의 뜻과 때마침 찾아온 상황은 필연적으로 그들을 해결사로 만들게 해주었다. 삼 남매가 구해내야 하는 이들은 대단한 위인도 아니었고 아주 연약한 약자도 아니었지만 그들만의 유대관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를 지켜낸 것이 될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1차원적인 유대를 찾으면 당연하게도 혈연이라고 하겠다. 피가 이어진 가족이라고 하여도 그것이 구성원의 노력에 따라 친밀할수도 있고 타인보다도 어색할수도 있는 것이 그들이다. 그 유대관계 아래 용서하고, 용서 받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삼남매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나갈 것인지, 읽을 사람들의 관점이 궁금해진다.

세상에는 마음이 이어진 진실한 가족이라는 형태가 있는 반면에 서로 상처주고 받으며 외면하는 이름뿐인 가족이 있기도 하지만 이 애매모호한 삼 남매는 정의 할 수 없게 만드는 복합성을 띄고 있어서 그것 또한 생각해볼만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삼 남매의 지인들로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호흡 역시 물에 녹아드는 공기처럼 이 소설 속에 스며들어 이 책을 통째로 감미하기에 딱 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

대단하게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장면이 없어도 충분히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정세랑 작가의 특기라고 할까. 정세랑 작가는 ‘재인, 재욱, 재훈’에서 거창한 것 없이도 우리들의 일생에는 히어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무겁지 않고 심플하게 묘사하고 있다. 만약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혹은 선물 받았다면 그것은 책을 주고 받은 이에 대한 고마움을 소소하게나마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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