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한국교수작가회 부회장

모처럼 시야가 확 트인 월미도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해변의 오후는 우중이어서인지 더욱더 이국적이다.

끼룩끼룩 새우깡 사냥에 맛 들인 갈매기들이 분주하다. 이따금 젊은 커플이 새우깡을 날리면서 갈매기 떼를 끌고 다니는 모습은 유희를 즐기는 태초의 인간을 연상시킨다. 문득 바다에서 시선을 거두어 돌아보니 전망 좋은 곳에 횟집들이 늘비한데 간판 경쟁에 불이 붙어 있다.

‘사장이 미쳤어요’ ‘광어부인 정(情)때문에’ ‘정家네’까지는 웃으며 지나친다. 그러나 ‘간다간다 뿅간다’ ‘덜렁이네 막 준대요’ ‘밧데리부인’ ‘삐삐부인 진동 왔네’에 이르러서는 웃기에도 지친다. 횟집마다 마구 퍼준다는 데에 포인트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갯가라 생선의 선도는 당연할 테고 값만 싸면 될 성싶기는 하다. 그러나 ‘곧 망할 집’이라는 간판에 이르러서는 두 손을 들 수밖에. 횟집마다 간판의 아이디어는 기발했으나 말초적인 낱말끼리 경쟁하다 보니 뒤엉켜서 도리어 자기만의 색깔이 없어져 버렸다. 마치 서로 물고 물리어 결국에는 한 마리도 탈출하지 못하는 바구니 속의 게들처럼…….

상인들 나름으로는 고객들의 취향을 계산한 발상이었겠지만 정작 아쉬움은 다른 데 있다. 항구는 갈매기의 날갯짓에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아릿한 이미지를 준다. 하늘을 품은 듯 드넓은 바다는 가슴마저 일렁이게 하는데, 현란한 간판들의 표제가 바다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모포 자락을 둘러쓰고 둘이 하나 되어 비 내리는 해변을 거닐던 젊은 커플이 황새처럼 걸어간 길을 되돌아왔다.

간판이 고객의 입맛을 자극하느냐 여부에 따라 손님의 숫자는 사뭇 달라질 수 있다. 손님들의 성향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 성향에 맞는 간판의 이름을 지어 달았을 것이고, 횟집 아짐의 앞치마는 더불어 불룩해졌을 것이다.

대형서점에 가면 책들의 제목 싸움이 요란하다. 그것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으며 책을 빼 들다가 월미도의 횟집 간판들을 떠올린다. 서점에서 책이 독자에게 선택되는 첫 관문은 책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제목이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간판 밑의 메뉴들처럼 소제목들은 독자의 또 다른 선택을 기다린다.

수필집 한 권에 들어 있는 작품 중에서 독자의 눈길을 끄는 수필 제목은 몇 편이나 될까?

이미지가 쉬 그려지는 제목은 기억의 방에 쉽게 들어앉는다. 만약 세상살이에 대한 가르침을 눈치 없이 제목으로 앉혔다면, 그것은 작가 스스로 독자와의 사이에 담을 쌓는 격이 될 것이다.

‘그해 겨울’ ‘세상 사는 이야기’ ‘기다림’ ‘내면의 향기’ 등의 제목보다는 ‘노래하는 벽’ ‘그녀가 선유도에 와있다’ ‘아프리카의 귀신들’ 등이 구체적이고 이미지가 강해서 훨씬 구미가 당기지 않겠는가.

생각을 뒤집어 책 제목을 횟집에 간판으로 달아보고, 횟집 간판을 수필집 제목으로 써 보자. 서점에 깔린 수많은 책 중에서 ‘밧데리부인’이나 ‘사장이 미쳤어요’ 같은 제목이 있다면, 책의 품격과는 무관하게 독자의 궁금증이 책갈피에 닿지 않을까. 또한, 횟집 간판에 ‘사랑이 사랑을 버리다’ ‘돌돌돌’ ‘하얀 숲’을 가정해 보자. 사랑이……. 는 단어의 반복에서 오는 말맛과 짧은 글 속에서의 반전이 묘미를 줄 것이다. 돌돌돌은 소리글자의 반복으로 구르고 감겨드는 말맛이 기억소자(記憶素子)로 남게 된다.

하얀 숲은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루어 격조 있는 횟집 이미지로 연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과 좋은 카피는 분명히 다르다. 좋은 카피는 필요한 그릇에 가장 적절히 담긴 글이고, 아름다운 문장은 그릇에 차고 넘치는 글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문장을 선호하지만, 광고카피나 간판 제목처럼 목적이 있는 글의 정답은 보이지 않는 뒷면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상화된 고정관념을 깨기란 쉽지 않다. 그런 고정된 생각들이 우리가 등잔 밑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마저 못 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넓은 바다의 적요는 모처럼 일상의 속도를 버리게 한다. 바다를 유영하는 유람선은 나를 감상에 빠뜨리고도 부족하다는 듯 바람마저 목을 휘감는다. 그러나 갯바람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을 때 횟집들의 간판은 무료한 한낮처럼 기억의 저변에서 사라져갔다.

고즈넉한 바다의 품을 거닐던 젊은 한 쌍은 설혹 ‘사랑이 사랑을 버린다’ 해도 결국은 그 집을 찾아들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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