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포스텍 가속기연구소 공학박사

가까운 후배가 대구에서 정밀기계 가공 업체를 운영하는데, 이 기업은 전자석에 특화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이다.

포항공대 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뜻한 바가 있어 연구소를 그만두고 전자석 회사를 만들어 30년의 노력 끝에 규모는 크지 않으나 지금은 세계적으로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인도와 러시아가 기초 물리분야에서 두드러진 기술을 가지고 있어 해당 제품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본사의 러시아 과학자가 이제 나이도 많이 들고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어서 자장(Magnet field) 설계를 도와줄 인도 기술자를 채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현지에 가서 면접을 보고 채용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통역 지원을 위해 함께 후배와 함께 인도를 가게 됐다.

하루쯤 재능기부를 하고 남는 시간은 뉴델리와 타지마할도 볼 작정으로 비록 4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승낙하고 기분 좋게 KTX에 올랐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달러로 환전을 했고 인도 현지에서 달러를 루피화로 바꿀 심산이었다.

후배는 수고비도 못 주는 것이 미안했던지 달러를 바꾸려고 하니 뭣 하러 환전하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모두 공동 경비로 다 처리할거니 염려 말라고 극구 말렸지만 혹시 몰라 100불만 비상용으로 바꾸고 지갑에 넣어 두었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줄을 서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근데 청천 벽력같은 소식에 망연자실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출국 심사 시 여권을 제시를 했는데, 후배의 여권이 유효 기간이 경과된 예전의 여권이었다.

바쁜 용무로 부인에게 여권과 짐을 대신 챙겨주라고 부탁을 했는데, 당사자가 아니어서 꼼꼼히 챙겨보지 못한 것 같았다. 옛 여권을 폐기하지 않고 함께 둔 잘못도 있지만, 그것을 확인도 않고 왔다가 출국 심사장에서 제지가 된 것이다.

다시 여권을 챙겨서 오기에는 비행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그 짧은 시간에 일정을 취소를 할지, 다른 방법을 찾을지 궁리를 했다. 결국 호텔이나 항공권을 취소할 수도 없고 우리와 약속된 인도인 인터뷰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로 혼자 인도행 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미리 인터뷰를 하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을 해달라는 부탁도 함께 들었다. 시간에 쫓겨서 혼자 허겁지겁 비행기를 타고 기내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몇 시간을 날아가면서 서서히 안정을 되찾자 항공기는 인도 간디 국제공항에 착륙을 하였다. 입국 수속을 밟는데 우리 줄만 줄어들지 않고 계속 지체가 되었다. 알고 보니 앞에 어떤 외국인이 비자를 챙기지 못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E-비자로 미리 신청을 하고 출력을 해 온 나로서는 오늘 하루 일어난 일에 쓴웃음이 나왔다. 여권을 확인하지 못해 출국을 하지 못한 후배나 비자를 확인하고 챙기지 못해 입국 거절을 당하게 된 저 외국인이나 다들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 같았다.

호주머니에 다행이 100불이 있어 환전 후 호텔로 가는 택시를 탔다. 숙소로 가는 도중 도로에서 처음으로 만난 인도인들의 생활상을 보면서 경악을 했다. 도로에 차와 사람, 자전거, 소, 짐승들까지... 호텔에 도착 후 짐을 풀자마자 쓰러져 버렸다.

아침에 숙소 주변 산책을 나섰다가 발을 잘 못 디뎌 넘어졌는데 주위에서 달려오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행색이 남루하고 늘 보던 얼굴들이 아니어서 순간 카메라부터 챙겼지만 그들은 출근길에 나를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인도인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현지인들의 두 가지 모습을 함께 보게 된 계기였다. 아침 10시 찾아온 인도 면접자와 대화를 나누고 다짜고짜 아그라(Agra)에 있는 타지마할을 가자고 했다.

짧은 시간에 그 사람을 알 방법도 없었고 여행을 통해 그 사람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하고 싶었다. 수도 델리에서 출발해서 8시간을 달려 도착한 타지마할은 참으로 웅장하고 멋있었다.

그 보다는 그 아름다운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가난을 보고야 말았다.

길거리 끝도 없이 늘어선 움막 같은 집들과 폭격을 맞은 듯 처참한 가정집들,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공터, 끊임없이 날리는 흙먼지.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핀다. 타지마할이 연꽃이라면 사람들이 사는 곳은 진흙이었다.

장소를 옮겨 구 델리의 가난한 일상을 접하고는 충격에 눈물마저 나오려 했다. 곳곳에서 만난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온 나라가 무너져 내려버린 듯 도시의 모습을 본 순간 ‘신이 버린 나라, 그렇지만 그 신을 용서한 인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뒤 도착한 후배는 간단히 재 면접을 하고 내게 믿을 만한 사람인가를 물었다. 나는 최소한 입사하면 과학기술 지식은 모르나,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마음씨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도에 와 보니 우리나라가 예쁜 보석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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