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아오자이에 핀 무궁화<22>-아빠가 애비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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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아오자이에 핀 무궁화<22>-아빠가 애비일 때
  • 영남경제
  • 승인 2020.09.1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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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주 작가
소장님의 산불 강의가 이어졌다.

수관화는 나무의 가지나 잎이 무성한 부분만을 태우며 지나가는 산불인데, 흔히 침엽수인 소나무나 잣나무에서 나타난다. 침엽수는 줄기와 잎에 나뭇진이 많고, 밑가지가 마르기 쉬워서 몹시 위험하다.

바람이 불어 불이 날아다니면 더욱 걷잡을 수가 없다. 산불을 끄기 힘든 이유에 경사와 기복이 심한 것도 들어있다. 가파르고 울퉁불퉁하니 차를 타고 올라갈 수가 없는 곳, 길도 만들어져 있지 않은 곳, 그곳을 헉헉거리고 올라가 갈퀴로 나뭇잎을 모두 긁어내어 산불이 번지는 걸 막아야 한다. 산불진화대원에게 가장 필요한 조건이 산불을 끄는 도구인 등짐 펌프를 휴대하고 산에 오를 수 있는 건강한 신체다.

소장님은 순비기나무 열매처럼 은근한 향내로 머리를 맑게 해 주었다.

아빠는 지표화를 발견했을 것이다. 불을 끄려고 애를 쓰는 동안 순식간에 수관화로 변한 산불을 보며 아빠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1초에 80미터의 속도로 번진다는 산불. 수관화 속에 사람이 있으면 도망을 갈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람도 1초에 10미터를 겨우 넘는다. 꼼짝없이 불의 감옥에 갇혔을 테지. 찻집 꽃멀미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구마나 감자를 구울 때 그 엄청난 불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릎까지도 오지 않는 불머리인데도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그런데 나무보다 더 높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보다도 몇 배나 빠른 속도를 가진 산불을 어찌 따돌릴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모습이 살아있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두극이의 말을 들은 소장님이, 아빠는 연기 때문에 질식했을 거라 했다. 하지만 두극이는 뜨거운 불속에서 죽음을 맞았을 아빠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순간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빠 생각에 몰두하다가 오솔길을 지나쳤다. 청하장터를 지나야 한다. 오후라서 할머니를 만날 리가 없는데도 장 구경을 나온 할머니를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를 만나 아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잠재우고 싶다. 아니 할머니를 보는 순간 현실로 돌아올 테니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두극이가 아빠를 그리워하는 만큼 할머니도 아빠가 보고 싶을까. 모르겠다.

두극이는 산림청 직원보다 소장님처럼 식물학자가 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헬리콥터 조종사가 되어도 멋있을 것 같다.

“헬리콥터 터미네이터는 한꺼번에 만 리터의 물 폭탄을 투하할 수가 있다.”

소장님의 얘기를 되새김질한다.

비행기에 불이 났을 때 비행장에서는 아주 큰 소방차가 출동한다. 소방차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가지고 있어서 괴물소방차라는 별명이 붙은 이 소방차가 싣는 물의 양이 12,000리터다. 그런 물을 호스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꺼번에 하늘에서 떨어뜨린다.

투하한다는 말이 신기했다. 물을 쏟아 붓는다는 표현보다 투하한다는 말이 헬리콥터의 힘을 더 강하게 나타내는 것 같다. 바람이 가장 잠잠한 새벽에 진화선을 만드는 것이 산불과 싸울 때 조금은 유리하다고 한다. 산불의 기세를 꺾을 수 있을 것 같은 때에 응원군 헬리콥터 소리를 듣는 산불진화대원의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산에서 불과 싸워야 하니 체력이 금방 바닥이 나서 오래오래 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카랑카랑하게 건조한 날. 햇빛이 눈부신 오후. 파란 하늘. 이런 따위가 근심스럽기만 한 사람들도 있었다. 산불 걱정이다. 해가 지는 것은 산불진화 헬리콥터의 철수를 의미한다. 나무가 타버리는 바람에 나무에 의지했던 바위덩이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캄캄한 밤이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다치기도 한다.

산불은 몇 킬로미터를 뻗어 누그러질 줄 모르는데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야간작업은 인간의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호흡을 어렵게 하는 재와도 싸워야 한다. 소방 헬리콥터가 떨어뜨려주는 물이며 밥이 아니면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 무전기를 타고 들려오는 힘겨운 소리, 소리들. 맹렬한 산불 앞에서 물러설 수도 없다. 불에 탈 것 같은 뜨거움과 맞서야 한다.

“꽃가루는 섭씨 200도 불길에서도 살아남아.”

그렇지만 공항 검색대에 보안견의 코를 능가하는 로봇이 등장하지 못한 것처럼 꽃가루만큼 강한 섬유를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며 소장님이 두극이를 쏘는 듯이 보았다. 소장님의 눈빛이 강렬해서 두극이는 제가 해 볼게요, 그런 소리가 나올 뻔했다. 곤충의 생태를 이용한 로봇 얘기를 들려주기도 한 소장님이다. 세직이 형처럼 과학자가 되는 공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왜 이렇게 되고 싶은 게 많을까. 소장님은 되고 싶은 게 많은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위로해 주었다. 어떤 길이든 선택할 수 있도록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라고 했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선택의 길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건 소장님이 중고등학생을 안내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집에 도착했을 때도 세직이 형이나 소장님과 나눈 대화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두극아, 할머니가 장터에 다녀오셨다.”

엄마가 한국어로 말했다. 할머니에게 먼저 가 보라는 신호다.

“할머니, 장터 좋으셨어요?”

두극이는 지금까지 빠져 있던 소방관이고, 헬리콥터 조종사고, 과학자고 하던 것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할머니에게로 달려가 할머니 표정부터 살폈다.

“아유, 귀한 우리 강아지.”

“어머니, 저번엔 두부가 빨리 떨어졌어요.”

“그랬구나. 우리 강아지가 더 많이 먹은 거구먼.”

할머니가 두극이를 강아지라고 부를 때가 할머니의 기분이 가장 좋을 때다. 할머니가 강아지라고 말할 때는 불안해하지 않고 할머니를 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할머니는 인자하고 따뜻하고 품이 넉넉해진다.

“어머니, 차 한 잔 내올까요?”

“그래라, 에미야. 이왕이면 베트남 식으로 내오너라.”

할머니가 말하는 베트남 식은 설탕을 듬뿍 곁들이는 거다. 엄마는 베트남 중에서도 남부 사람이라 달콤한 음식을 좋아했다. 베트남에서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는 짠 음식을, 후에나 다낭 같은 중부 지방은 매운 음식을, 그리고 호치민에서 메콩델타로 이어지는 남부 지방은 달콤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런 날 엄마는 두극이와 함께 베트남으로 훨훨 날아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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