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희 기자
ⓒ윤주희 기자

함수율 규제하지 않은 옛 폐기물관리법이 사고 원인
재난위험 ‘D등급’ 매립장 강화된 현행법 적용 굴착, 고형, 이송과정 통한 재정비
행정절차와 주민의견수렴을 거쳐 빠르면 2021년 하반기 착공



국내 최대 환경오염사고로 지목됐던 구 유봉산업 매립장 붕괴사고 지역이 응급복구 25년만에 항구적인 안정화를 위한 재정비에 들어간다.

네이처이앤티는 지난 94년 당시 붕괴되어 응급조치한 매입장에 대한 항구적 복구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지역은 그동안 붕괴사고 이후 사업을 인수한 네이처이앤티가 지속적으로 관리해왔지만 지진피해 여파와 최근 잦은 폭우로 인해 재난위험시설 ‘D등급’ 판정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네이처이앤티는 위험재난시설관리와 안정화가 더욱 필요해진 상황에서 항구적 안정화 대책을 제시했다.

◇사후관리매립장 안정화는 왜 하나

1994년 매립장 붕괴사고가 발생하고 이듬해 응급복구가 마무리됐지만 매립장 안전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2009년 사후관리매립장 내부 압력에 의해 유동성이 심한 염색슬러지가 매립장을 뚫고 나와 인근 도로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2012년에는 매립장 내부 압력 팽창으로 제방 일부가 붕괴되면서 인근 E사 담장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응급복구에도 불구, 매립장이 불안정한 것은 당시 유출된 수십만t의 폐기물을 서둘러 쓸어 담는데 급급한 나머지 수분 제거 등의 다짐작업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사고를 계기로 환경부는 매립폐기물의 함수율과 다짐작업을 규정하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을 새롭게 제정했다.

이같은 매립장의 안전문제는 2015년 6월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당시 포항시의회(복지환경위원회)는 과거 응급복구 매립장의 유동성 문제로 인해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자, 네이처이앤티 사후관리매립장을 찾아 매립장과 제방의 안전 상태를 둘러본 뒤 포항시 관련부서에 안정화를 위한 대책방안을 주문했다.

포항시 환경식품위생과(환경정책과)는 2015년 7월 ‘사후매립지의 안정화 미흡 원인분석 및 근본대책’을 강구하라는 공문을 회사 측에 보낸데 이어 11월 ‘매립지 안정화 미흡 원인분석 용역수행 세부추진 계획서 제출’을 요청하는 공문을 또다시 보냈다.

네이처이앤티는 2016년 1월 안정화 조사 용역기관을 포항시와 협의한 끝에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6매립장 안정화 조사’ 용역을 의뢰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약 5개월 동안 6매립장에서 매립폐기물(염색슬러지)의 상태를 비롯해 사면부 안정성, 시트파일 심도확인 탐사(P파검층) 등을 실시한 결과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의거해 재난위험시설 D등급으로 판정했다.

연구원 측은 매립물량의 대부분(약 75%)을 차지하는 염색슬러지의 수분이 전혀 배수되지 않아 높은 유동성을 유지하고 있고, 이는 제방의 하중부담으로 이어져 지진, 폭우 발생 시 폐기물 유출 또는 재방붕괴 등 재난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우려했다.

연구원은 1994년 유봉산업 매립장 붕괴사고로 매립지 내부의 침출수 및 매립가스순환 설비가 파손됐고, 이러한 상황에서 함수율이 높은 염색슬러지를 다짐작업 없이 그대로 매립한 것이 현재 매립지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했다.

◇사후관리매립장 안정화는 어떻게 추진되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매립장 안정화를 위해 ‘진공압밀공법’ ‘동전기배수공법’ 등을 검토했으나 빗물 유입에 따른 재슬러지화 가능성과 내부 압력 변화로 오히려 제방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안정화 비용 부담은 많지만 항구적 안정화를 위해서는 ‘전량 굴착 후 처리공법’ 적용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사후관리매립장 안전진단 용역결과에 대한 신뢰성 확보를 위해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관리공단에 의뢰한 기술검토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당시 정밀안전진단을 수행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정재형 박사는 “첨단장비를 동원해 매립지 내부와 사면부 안정성에 대해 면밀히 조사했는데, 이러한 상태로 지금까지 버텼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서 “가장 현실적이고 안전한 굴착, 고형화 후 이송처리 하는 방안을 조속한 시일 내 시행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사고 매립장의 항구적 안정화를 위해서는 굴착, 고형화한 폐기물을 옮겨갈 이송부지확보가 최대 관건이었다.

이 회사가 20년 전 포항시에 제기된 민원을 대신해 매입했던 연접부지를 2018년 도시기본계획과 2019년 도시관리계획을 통해 이송매립지로 확보함에 따라 매립장의 항구적 안정화 사업에 탄력을 받게 됐다.

네이처이앤티는 최근 안정화를 위한 이송매립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등 행정절차를 밟고 있으며 조만간 주민설명회를 거쳐 빠르면 2021년 하반기 본격적인 안정화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네이처이앤티는 행정절차와는 별도로 지난 7월27일 대송면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전현장설명회를 열어 1994년 6월 유봉산업 매립장붕괴사고 발생과 응급복구 과정, 재난안전시설 D등급의 현재 매립장의 상태, 안정화 대책방안 등에 대해 설명했다.

네이처이앤티는 사후관리매립장 안정화가 추진되면 대형 가설시설물을 설치해 염색슬러지와 고화제(생석회)를 섞어 슬래그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과 건조작업을 실내에서 진행하는 등 환경오염방지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안정화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

최근 포항과 경주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형 지진으로 불안정한 매립장의 재난위험성이 높아진 가운데 항구적 안정화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오랫동안 포항지역의 주요 재난위험요소를 하루빨리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전현장설명회에 참석했던 주민들은 “복토된 흙을 걷어내자, 폐기물이 치약처럼 솟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유봉산업 매립장 붕괴사고 이후 2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저런 심각한 안전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안정화를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송매립지는 2019년 포항시 도시관리계획을 추진하면서 지하는 폐기물처리시설, 지상은 공원으로 중복결정돼서 안정화를 위한 이송매립 역할이 끝나는 착공 1~2년 후에는 철강공단과 주택지 사이 완충녹지역할을 하는 생태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또 포항지역 매립시설 부족난 해결도 기대된다. 포스코를 비롯한 포항철강공단 입주업체들이 연간 약 20만㎥의 폐기물을 배출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사업을 통해 향후 20년간 지역발생 폐기물의 원할한 처리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네이처이앤티의 지난 10년동안 매립폐기물 처리실적을 보면 포스코를 비롯한 순수 포항지역 발생폐기물이 61%였고, 대구·경북을 포함한 지역폐기물 처리비율은 9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네이처이앤티 관계자는 “2003년 법정관리 중이던 이 회사를 인수했지만 안정화에 대한 법적 책임을 떠나 이번 기회에 항구적 안정화를 추진해 재난위험시설을 제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며 “철저한 환경오염방지와 안전대책을 수립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유봉산업 폐기물매립장 붕괴사고는 1994년 6월20일 몇 일째 내린 폭우로 인해 매립장 제방이 무너지면서 6, 7매립장에 매립됐던 수십만t의 폐기물이 공단 하천으로 유출됐고, 약 1년간의 공사 끝에 응급복구를 마무리했다.

당시 유봉산업 매립장 붕괴사고는 낙동강 페놀사건과 함께 1990년대 3대 환경사고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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