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동 (사)아인 이사장

태풍이 지나간 자리의 상흔은 처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름 내 푸르던 나뭇잎들이 조각조각 바람에 찢겨져 휴지처럼 쌓여 있고, 아름드리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 여기저기 넘어져 흉하게 누워있습니다.

시내버스 승강장이 통째로 넘어져 있고, 아파트 창문들이 산산조각이 나 있는 아픈 흔적들이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자리입니다. 교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곳곳마다 십자가 철탑이 무너지고, 지붕이 뜯겨져 나가는 재해를 당했습니다.

우리 또한 수련원 담과 벽이 무너지고 지붕이 날아가는 피해를 입고 보니, 밤을 세워가며 피해복구를 해도 손이 모자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너무나 감사한 것은 더 큰 피해를 당치 않아 감사하고, 함께 피해를 수습할 직원들이 있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시골교회는 유난히도 크고 작은 일들에 교역자들의 역할이 다양하게 많이 요구됩니다.

저 자신이야 늘 일에 익숙한 목회여서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부목사님들과 두 명의 간사들의 헌신이야말로 얼마나 값진 것인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말없이 순종하며 아무리 험한 일일지라도 묵묵히 따라와 주는 직원들의 헌신이 저에겐 천군만마 같은 아름다운 동역자들인 것입니다.

어제는 종일토록 비가 내렸지만 수련원 이불을 넣어둔 창고가 마이삭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서 빗속에서도 종일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던 밤, 근무시간도 아닌 시간에 불려 나온 부목사님 내외와 함께 비를 맞아가며 직원들과 늦은 밤까지 일을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비에, 고된 일에 지쳐가고 힘듦에도 말없이 일하고 있는 중에, 부목사님 사모님의 한마디가 모두의 피로감을 단번에 날려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들 늦은 밤까지, 비를 맞아가며 험한 일들을 하고 싶겠습니까만, 사모님은 어찌된 사람인지 소녀 같은 해맑은 표정으로 “비를 맞으며 일하는 것이 너무나 재밌다”는 것입니다.

모두들 힘들 때, 힘들다 힘들다하면 더 힘들어질 일들을 누군가 “재밌다”고 말하는 순간, 정말 재미있어지는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신선한 한마디가 던져주는 회복의 힘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납니다.

태풍 마이삭이 무섭게 지나던 새벽시간, 혼자서 수련원을 지키며 태풍에 현관 유리문이 바람에 흔들려 깨어질까 소파를 갖다 대었다가 테이블을 갖다 밀었다가 고군분투하며 유리문 너머로 달려드는 무섭고 큰 태풍과의 사투를 벌이며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계속 이어서 태풍이 지나고 지쳐있을 사이도 없이 복구를 위해 뒷수습을 하며 이틀을 또 보냈습니다.

밤사이 안부가 궁금했던 이성희 목사님의 걱정스런 안부전화와 몇몇 교인들의 걱정스런 안부가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며 마음 따뜻한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서로를 염려해주고 걱정해주는 동역자들이 계셔서, 우리 교인들이 계셔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틀째 밤을 새며 복구를 하고 있는 지금에도 주일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 직원들은 분주합니다. 그래도, 그럼에도, 이만함에 감사하며, 우리보다 더 힘들고 아픈 이들을 돌아봐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무서운 태풍의 위력 앞에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작고 초라한 것인지, 그리고 모든 것을 움직여 가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크고 크신 분이신지를 또 한 번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시요 주관자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시 한번 찬양하며 영광 올려드리며, 우리의 모습, 하나님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을 또 한번 납작 낮춰봅니다. 새로운 하루를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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