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아오자이에 핀 무궁화<20>-아빠가 애비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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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아오자이에 핀 무궁화<20>-아빠가 애비일 때
  • 영남경제
  • 승인 2020.09.1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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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주 작가
두극이는 훤칠하게 큰 세직이 형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남자 어른 손을 잡을 때가 참 좋다. 형이 손을 빼더니 뒷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 했다. 넘어가지 않으려 버텼다. 제법 힘이 세졌다고 형이 칭찬을 했다.

“형, 꿈이 바뀌었어.”

“어떻게?”

형이 놀라지 않아서 두극이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얼마나 고민을 했는데 형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다.

“소방관이 되고 싶어.”

“그것도 좋겠지. 과학자 꿈은 접은 거야?”

사실 형하고 얘기할 땐 언제나 기분이 좋다. 친구인 듯 하면 선생님 같고, 선생님인가 싶으면 그냥 형이다. 요즘 할머니 눈치를 살핀다고 조마조마하던 참이라 형과 얘기를 나누는 게 더욱 즐겁다. 할머니가 뭔가를 물으면 너무 빨리 대답해서 탈이 나곤 한다. 너무 빨랐구나 싶어 천천히 대답하면 그게 또 말썽을 일으켰다. 세직이 형에겐 뜸을 들이다가 대답을 해도 괜찮고, 후다닥 대답해도 형이 잘 받아준다.

“얼마 전 과학 시간에 선생님이 산불 얘기를 하셨거든. 화왕산인가 거기서 억새 태우기를 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사람이 죽었대.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토할 것 같았어.”

눈물이 그렁해진 눈으로 두극이가 형을 올려다보았다. 형이 애처로운 눈길로 두극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아빠 생각이 많이 났구나, 너. 난 워낙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었기 때문에 나보다는 그래도 네가 낫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네. 아빠하고 함께 한 시간이 많아서 아빠를 더 그리워할 것이라는 생각을 내가 미처 못 했어. 형이 네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두극아.”

“형, 그때 내가 아빠랑 같이 갔으면 아빠가 사고를 안 당했을지도 몰라.”

그날 컴퓨터 게임에만 빠지지 않았더라면 아빠와 같이 산에 갔을 텐데. 아빠와 곧잘 산에 다녀왔는데 그날은 선뜻 따라나서지 않았다. 엄마가 역사극 영화를 본다고 아빠와 같이 나서지 않자 덩달아 집에 머물렀던 것이다. 홀로 등산길에 나섰던 아빠는 산에 불이 난 것을 발견하고 불을 끄려다가 사고를 당했다. 아빠가 혼자였기 때문이다. 왜 아빠 혼자 가게 했을까. 왜 그랬을까.

“또 그 소리, 그렇게 생각하지 마. 누구 때문이 아니야. 누구 때문이라고 따지고 들면 거기서 제외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그랬잖아.”

“아빠가 그렇게 같이 가고 싶어 했는데, 난 게임만 하고 있었거든.”

“그러면 게임을 만든 사람도 책임이 있고, 컴퓨터를 만든 사람도 책임이 있어. 아니 길버트, 볼타, 맥스웰이나 에디슨 같은 전기를 만든 과학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해.”

“에이 형, 과학자들에게 무슨 책임이 있어.”

“과학자들의 책임이라니, 말도 안 되지? 마찬가지야. 너 때문도 아니야.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빠도 사고로 돌아가신 거야.”

“그럴까, 형.”

잠시 생각에 잠겼다.

“꼭 소방관이 되고 싶어. 산불이 나도 아무도 죽지 않게 빨리 소방차를 타고 가서 불을 끌 수 있잖아.”
형이 말없이 두극이를 바라보았다. 마주보던 두극이가 눈길을 떨구고 중얼거렸다.

“형, 내 꿈이 너무 자주 바뀌는 거 같지? 게임에 빠져 있을 땐 프로게이머가 꿈이었거든.”

형이 픽 웃었다. 두극이는 형이 비웃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아무리 형이 대단한 대학교에 다니더라도 남의 꿈을 비웃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무룩해진 두극이는 쉼터 난간에 기대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운 아버지의 자리’ 안내판에 눈길을 주고 있을 때였다. 형이 두극이의 뺨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두극아, 어릴 땐 꿈이 자주 바뀌는 모양이다. 나도 프로 야구 선수가 꿈인 적도 있었고, 사과밭 주인이 되고 싶기도 했거든. 한때는 너처럼 소방관이 되고 싶기도 했어. 소방관이 활활 타는 불길 속에서 사람을 구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거든.”

형이 눈을 찡긋 했다. 왜 형이 픽 웃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어 기분이 풀렸다. 두극이는 텔레비전에서 본 소방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출동 명령을 받은 소방관들이 빠른 동작으로 옷을 갖춰 입고 차에 오르는 모습을 흉내 냈다.

“아주 훌륭해.”

형이 기운을 북돋웠다. 두극이는 우쭐해졌다. 난간을 붙들고 넘어가려 하자 형이 벌떡 일어나 두극이를 안았다.

“하두극 소방관, 타고 내려갈 기둥이 준비되지 않은 게 안 보이나. 아직은 참게나.”

형이 간지럼을 태웠다. 두극이는 형에게 지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두극아, 항복! 형이 배가 고파서 힘을 쓸 수가 없다.”

형의 말을 듣자 두극이는 또 서운했다. 이 말은 형이 이제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더 일찍 식물원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

“형, 이제 언제 또 와?”

이제 또 한 달은 기다려야 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한 달이 지나도 형이 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엔 몹시 허전했다. 소장님을 자주 본다고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소장님과 형이 차지하는 마음자리가 다른 모양이다.

형과 나란히 쉼터를 내려와 향수원 관찰로로 향했다.

“언제라고 약속을 하면 네가 많이 기다리잖아. 우리는 전생부터…….”

“인연이 깊어서 약속하지 않아도 만나게 되어 있어.”

두극이가 얼른 형의 말을 받았다. 형이 곧잘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형이 두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형제 모습이 보기 좋으네. 도련님들, 잘 가요.”

매표소 아줌마가 배웅을 한다. 아줌마 목소리는 직박구리 지저귐처럼 높고 쾌활하다. 형제라는 말이 직선으로 귀에 꽂힌다. 두극이는 조금 남아 있던 서운한 마음을 날려버렸다.

청하로 175번길로 들어섰다. 형을 배웅할 생각이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긴 하지만 형은 두극이를 먼저 보낼 것이다. 이별한 뒤에는 남은 사람이 더 힘든 법이라며 형은 꼭 뒤에 남는 쪽을 택했다. 형에게 손을 흔들고 난 뒤 마구 달렸다. 틀림없이 형이 보고 있을 것 같아 뒤돌아보니 형이 손을 높이 들었다.

집으로 달리는 발걸음이 시간을 재촉했다. 기다려지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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