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절차에 그 가치가 있다고 한다.

국가가 결정하는 수많은 일들의 결과가 모든 민의에 부합할 수 없다는 한계로 인해 국민을 위한 모든 결정은 법에 따른 절차와 시스템에 따른 과정을 거치도록 한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 방식이다.

지난 26일 경주시는 전국고교축구대회 개최를 결정함에 있어 그동안 쌓아온 시정 운영의 민주적 정당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태를 보였다.

더구나 그 시정 운영 시스템의 파괴 주체가 최고 책임자인 주낙영 시장이라는 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 의해 당선된 민선 시장이다. 따라서 시민으로 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민주적 절차와 시스템에 따라야 하며 그 목적 역시 시민들을 위해야 함은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주 시장은 시민의 안전과 이익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사안을 독재시절의 그것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내 맘대로’ 식 결정을 하고 말았다.

광양의 대회 개최 취소 통보 당일인 8월 26일, 다시 말해 대한축구협회가 경주시에 협조 요청한 당일, 정확히는 주무부서 과장이 협회의 요청 내용을 보고한 자리에서 경주시장은 곧바로 대회 개최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25만 경주시민의 안전이 단 한 사람의 잠깐 동안의 판단에 좌지우지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주무부서의 보고와 시장의 결정이 있기까지 당연히 있어야 할 절차와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행사 주체가 될 경주시체육회 또는 경주축구협회와의 협의도 없었고, 코로나19 방역·감염 관리에 대한 준비를 위한 관련부서 의견청취도 없었고, 시민의 여론과 의사를 대변하는 시의회마저 무시하며 이뤄진 행정권력의 독단적 행사였다.

광양을 대체할 개최지 찾기에 발을 구르던 대한축구협회와의 관계를 위해 경주시민의 안전을 볼모로 삼게 되는 결과가 시민의 손으로 뽑은 시장 한 사람의 판단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참가 학생들의 입시를 걱정해 내린 결정이었다는 말도 있으나 참가 고교 중 경주지역 학교는 없고 대부분 서울·경기와 전라·광주지역 학교라 설득력이 없다. 자신을 뽑아준 시민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했다는 지적이 있는 이유다.

시민들이 2018년 주낙영 시장에게 투표하며 기대했던 것은 ‘시민을 위해 일하는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부디 12일간의 대회 기간 동안 경주시는 방역과 감염 관리에 만전을 다해 아무런 감염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경주시장은 늦지 않게 경주시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함으로써 시민들의 불안을 달래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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