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주 작가

독서 시간이 끝나자 윤수가 쪼르르 쫓아와서 교실에 늦게 들어온 이유를 물었다.

“신짜오, 겨울방학 때 베트남 가?”

윤수가 베트남이라는 책 제목을 보며 물었다. 두극이가 윤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윤수가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살짝 찌르며 목소리를 깔았다.

“신짜오, 베트남은 있잖아…….”

윤수가 이렇게 작정을 하고 떠들면 웬만해서는 말릴 수가 없다. 윤수가 떠드는 베트남 얘기는 책을 펼치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얘기였음에도 윤수는 마치 혼자 아는 것 같다. 아니 베트남에 다녀온 두극이나 규민이보다 윤수는 더욱 실감나게 베트남 얘기를 했다.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본 베트남 얘기까지 보태어진 윤수의 베트남 여행기는 두극이의 마음에 엉켜있는 미로를 서서히 정돈해 주었다. 윤수의 베트남 여행기가 할 수 없이 끝난 것은 1교시 수업 종이 쳤기 때문이다.

1교시는 과학이다. 두극이는 온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구석구석에서 과학에 반응을 하는 것이다. 앞 건물과 뒤 건물을 잇는 통로에 과학 선생님이 나타난다. 과학 선생님은 운동선수처럼 날렵한 몸매로 나는 듯이 걷고 있다. 두극이는 놀이공원에 가는 아이처럼 나타나는 과학 선생님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이런 얘기는 윤수에게도 하지 않았다. 윤수에게 말해 버리면 은밀한 즐거움이 달아날 것 같다. 외가 식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과는 달랐다. 아빠 얘기를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는 것과는 아주 달랐다.

과학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나타나자 환호와 함께 떠나갈 듯 박수를 쳤다. 박수는 선생님이 교탁 앞에 멈춰서 같이 박수칠 때까지 이어진다. 과학 시간엔 수업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인사 대신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처음엔 서로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시간이 갈수록 소리가 커졌다. 어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기 위해서 과학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파워포인트 자료가 칠판에 나타났다. ‘물과 무기 양분의 흡수’라는 제목이 도드라져 크게 나타나 멈춘다. ‘나의 생각 표현하기’ 배경에는 벌써 가을이 무르익었다. 단풍이 든 풍향수 나뭇잎에 햇빛과 그늘이 보인다.

“식물이 잘 자라려면 잎이 햇빛을 잘 받아야 합니다. 잎에서는 어떤 작용이 일어날까요?”

환호와 박수로 시작한 달뜬 기운이 채 가라앉지 않은 아이들은 알고 있는 것들을 마구 쏟아낸다. 아우성 속에서 선생님이 몇 사람을 지명했다. 두극이는 서서히 발표할 준비를 했다. 선생님과 두어 번 눈이 마주친 때문이다.

“다음은 …….”

“하 박사!”

아이들이 두극이를 향해 입을 모았다.

“그래, 하 박사 생각 좀 들어보자.”

과학 선생님이 두극이에게 붙인 별명을 아이들이 재미로 불러 주었다.

“광합성 작용이 일어납니다.”

광합성에서 시작한 두극이의 발표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 넘어가 유기물과 무기물 얘기로 끝났다. 두극이는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래, 박사 맞네.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하는 소리에 섞여 ‘생활 속의 과학’이 나오고 ‘생각 열기’가 이어졌다.

- 낙엽을 태우면 어떤 냄새가 나는가? 낙엽이 타는 모양은 어떤가? 낙엽이 타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 등장한 장면은 ‘산불 조심’이었다. 선생님은 화왕산 억새밭 태우기 때의 비극을 되새겼다. 두극이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선생님의 설명은 산불 때문에 일어난 불행으로 이어졌다.

속이 거북하다 싶더니 두극이는 토하고 싶도록 힘들어졌다.

“하 박사. 두극아, 어디 아프냐?”

별명을 부르다가 두극이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던지 선생님이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어, 두극아, 네 얼굴이 흰 종이 같애.”

윤수가 소리쳤다.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선생님, 토할 것 같아요. 화장실에 다녀와도 돼요?”

선생님의 허락을 받기가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둘러 변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괴로웠다. 억지로 토해보려 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변기를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에 방금 교실에서 보고 나온 화왕산의 붉은 하늘과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어지러웠다.

이를 악물었지만 코끝이 찡해지더니 이내 매워지고 눈물이 흘렀다.

“아빠.”

변기를 붙잡고 흐느꼈다.

무릎에 아픔이 느껴져 내려다보니 여전히 꿇어앉은 채였다. 힘들게 일어났다. 거울을 보니 운 모습이 역력하다. 세수를 하여 흔적을 지웠다. 손으로 물을 훔친 후 거울을 보았다.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물과 눈물은 같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하두극.”

큰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하 더우 끅.”

이번엔 베트남어다.

거울의 사나이를 향해 씨익 웃음도 던졌다. 팔로 얼굴의 남은 물기를 훔쳤다. 다시 한 번 웃어보았다. 합격이다. 이제 교실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다. 발걸음을 떼면서 보니 양말 바람이다. 교실에서는 실내화를 신지 않는다. 서두르다가 미처 신발을 챙기지 못했다. 현관에서 발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먼지를 털어낸 다음 교실로 들어갔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일제히 두극이를 보았다. 연습한 대로 씨익 웃었다.
수업을 마칠 때도 박수를 친다. 박수를 치면서 다가온 선생님이 괜찮으냐고 또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아니 괜찮아야 했다. 견뎌내야 했다. 엄마와 할머니 모습이 스쳤다.

“선생님.”

두극이는 선생님 뒤를 쫓았다. 우선 선생님 앞에서 괜찮아지고 싶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봤거든요. 고래…….”

“요즘 하 박사가 고래에 관심이 많다?”

“그냥 그렇게 됐어요. ……불법으로 고래를 많이 잡았다는 뉴스를 봤어요.”

“고래를 국제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말을 내가 했던가?”

“특히 일본과 노르웨이에서는 잔인하고 무차별적으로 고래를 잡고 있다고 하셨어요.”

“고래를 잡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불법이야.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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